신출귀몰한 전략가인 줄로만 알았던 제갈공명, 그의 실체를 들여다보다
누구나 현재가 암울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에는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듯이, 지금의 시대가 혼탁해 보이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어리석어 길을 알기 어려울 때에는 이따금씩 과거의 현인들에게 길을 물어보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현인들이 있었지만 요즈음 내가 종종 생각하는 현인은 '삼국지'로 널리 알려진 제갈량이다.
어릴 때는 그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신묘한 책사 정도로만 알았던 제갈 공명이었지만, 내가 직접 여러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해 본 그의 이미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한 마디로 '공정한 상벌의 집행자', 그뿐이다. 여러 사료에서 제갈량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부분 또한 바로 그 부분이다. 그의 군사를 다스리는 재능이나 전쟁에서 활용한 책략, 인재를 기용하는 능력 등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상과 벌을 공정하게 집행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정도이니 말 다 한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주고 원수라도 선을 행한 것이 있으면 빼 놓지 않고 꼭 상을 주었다는 제갈량. 상과 벌을 공정하게 집행함에 있어서는 신명이 감동할 정도였다고 하니, 실제로 그렇게 법이 집행되는 나라에 잠깐이라도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혹자는 제갈량이 상과 벌을 주는 것은 거울이 만물을 차별 없이 비추는 것과 같아서 벌을 받는 사람도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수 없었다고 평할 정도이니, 그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마음을 썼던 모양을 짐작할 만 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아 교묘하고 간사한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의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선을 행하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접하게 된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사용된 지 이미 오래이지만, 정말 국내 도입이 시급한 것은 제갈량과 같은 공정한 상벌의 집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벌을 받는 사람조차도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게 했다는 그의 신묘한 마음 씀을 오늘날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때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