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는 사람들
처음 태권도를 하자고 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다들 손을 쓰고 살고 발을 쓰고 살지만, '야, 발을 이렇게 한 번 움직여보자.'라고 원천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남들 다 쓰고 사는 발인데 조금 다르게 움직여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 원천 아이디어 하나가 지금의 태권도를 만들었고, 그 아이디어 하나 안에 이미 지금의 태권도와 미래의 태권도까지 씨알로 다 저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술가에 대해서 '누구나 다 가지고 사는 몸인데, 다른 사람들과 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또 시인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품고 사는 희로애락의 정서를,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무술에도 잘 살펴보면 같은 스승 밑에서 내려오는 여러 파들이 있고, 시인들의 세계에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시를 쓰는 파가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는 하나의 원천 아이디어에서 파생되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원천 아이디어가 좋아 보이면 사람들은 그걸 따라하고, 따라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아이디어는 널리 퍼져서 문화가 된다. 영화 한 편만 보더라도 아이디어 하나에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몇 개월에서 몇 년동안 열정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가. 만약 그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모여든 몇 백명의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별로 좋지 않은 아이디어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다 같이 망하는 경우도 많고, 아주 좋은 아이디어에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널리 좋은 문화를 보급하는 일도 많다.
적어도 그 아이디어에 참여한 사람에게 '와, 내가 이런 명작에 참여하다니.' 또는 '내가 이렇게 고급 아이디어에 힘을 보태다니.'라는 뿌듯함과 소속감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원천 아이디어라야 세상에 좋은 문화를 퍼뜨리는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굴리고 세상을 굴릴 큰 원천 아이디어. 그 작은 씨앗 하나가 우리의 손에서 뿌려졌으면 좋겠다. 씨앗(아이디어)이 좋으면 그 씨앗에 물(자본)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씨앗과 물과 사람 셋이 모두 모이게 된다. 이는 곧 현실에서 일이 이루어지기 위한 세 가지 요소다. 아이디어와 자본과 사람. 원천 아이디어가 양질의 것이라면 이는 반드시 일을 이루어내고, 널리 퍼져서 좋은 문화를 만들고, 세계의 문화 판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많은 씨앗을 세계 속에 뿌렸고, 다른 나라에서 뿌린 씨앗들도 우리나라에 많이 건너와 있다. 흔히 한류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 음악, 예능 컨텐츠는 물론이고 게임이나 우리 먹거리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컨텐츠들도 있다.
그 중 특히 기성 세대에게서 곱지 못한 시선을 받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인류는 전체 인류 역사 속에서 봤을 때 지금과 같은 비디오 게임을 누려 본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만들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이 비디오 게임이 우리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정확히 모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대하면 공포심을 느낀다. 공포심을 느낀 사람은 반드시 그 대상을 없애려고 한다. 게임을 반드시 없애야 할 사회 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게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보면 그 심리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될까? 게임을 잘 다스릴 자신이 없기 때문에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은 우리가 연구해나가면서 잘 다스리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제거하고 제한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인류는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도 예전부터도 여러 가지 놀이와 게임을 즐기며 살아 왔다. 놀이 문화를 즐기려고 하는 것은 오랜 인류의 본능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유익함을 끼치면서 더 즐겁게 놀 것인가 하고 생각해야지, 무조건 놀면 안 된다는 것은 매우 진부한 발상이다. 다만 놀이와 게임이 나쁜 쪽으로 흐를 가능성도 당연히 있기 때문에, 잘 다스리면서 나아가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양질의 원천 아이디어들이 많이 필요한 실정이다.
나는 여러 원천 아이디어를 보았다. 우리의 사회와 일상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아서, 우리는 어쩌면 처음 이 사소한 원천 아이디어들을 생각해 낸 사람들의 발상 속에서 크고 작은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더욱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그들도 보면 놀랄 하나의 큰 원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일이 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일이 아닐지.
누구나 쓰고 사는 그것을, 조금 다르게 쓰는 일에서 아이디어는 시작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