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벌레와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식물 중에서 유독 인간만이 '아주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특이한 동식물이 있어서 인간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매커니즘으로 독자적 사고를 하고 삶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인간 이상의 의사소통을 동족끼리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진 부분으로만 따지면 인간 외에는 그러한 종이 없다.
이렇게 복잡한 사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단순히 육체적인 한계에만 갇혀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한계'에도 자주 갇히게 된다. '생각의 한계'에 갇힐 수 있다는 건 달리 말하면 아주 높은 지능을 갖고 있는 생물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벌레 한 마리를 눌러 죽이면서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다른 벌레들에게 '본보기로 이 벌레를 처형하였으니, 앞으로 이 영역에 침입하는 개체들은 모두 이와 같은 꼴을 당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하고 엄포를 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상식적으로 이런 방법이 벌레 퇴치에 도움이 되겠는가? 당연히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벌레들은 복잡한 사고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의 한계', 즉 '내가 저 인간의 눈에 띄면 방금 처형당한 저 벌레처럼 끔찍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거야'라는 공포에 갇히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저차원적인 본능에 따라 먹이를 찾아 움직이고, 생존을 위해 단순한 움직임을 보일 뿐 복잡한 생각의 감옥에 갇혀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두려워하고 자신을 그 감옥 속에 가두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지능이 발달한 생물들은 스스로를 이런 공포 속에 가둘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수준까지 오게 되면 이 '생각의 한계'라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힘으로 한 사람의, 그리고 한 사회의 움직임을 묶어 놓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요 근래에 와서 크게 유행했던 '가스라이팅'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지능이 높고 복잡한 사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스라이팅'은 꽤 잘 먹혀 들어간다.
스스로를 의심할 수 있을 정도의 복잡한 사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스스로를 의심하라고 옆에서 부추기면 이 감당 안되는 높은 지능과 예민한 감수성을 갖춘 이들은 금방 자기 자신을 가두는 감옥을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 앉아 버린다. 놀랍게도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이들은 그저 '너 자신을 의심해 보라'고 옆에서 부추긴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스스로를 가두는 정신적 감옥을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건축해서 그 안에 들어가 앉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준 건 모두 지능이 높은 이들이 자신의 힘만으로 한 일이다.
이렇게 해서 인류 사회에서는, 특히나 상식과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서는 사회적인 가스라이팅이 횡행하게 되었다. 선량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어 스스로 힘을 잃고 자멸하게 만드는 이 사회적 가스라이팅의 논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모든 논리를 통틀어서 결국 전해지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넌 안돼'라는 메시지. 놀랍도록 다양한 분야를 건드리는 것 같지만 결국 '넌 안돼'라는 메시지 하나를 전하기 위해서 오늘도 비상식적인 일부 인간들은 사회적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타인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이런 가스라이팅을 적극 활용하는 부류도 있지만, 때때로 그냥 자기 자신의 인생이 안 되는 이유를 찾다가 자기도 모르게 사회적 가스라이팅에 합류하는 부류의 인간들도 있다. 안 되면 그냥 안 되는가 보다, 하고 되는 일을 찾으면 되는데, 그렇게 그냥 넘기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내가 안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 사람들.
자기 혼자 그러고 있으면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느라 애쓴다고 봐 줄 여지라도 있는데, 그 얼토당토 않은 논리를 타인에게까지 들이밀면서 '봤지?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똑같은 이유로 안 될 거야.'라고 다 같이 망하자는 논리의 전파자가 되어 버리는 사람들. 안 되는 이유를 찾아 헤매면서 뭐라도 하나 그럴듯한 걸 찾아내면 다 같이 망하자고 그 논리를 부르짖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더 이상 '자존심에 상처 입은 불쌍한 존재'로만 봐 줄 수가 없고, '전체 사회를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애쓰는 가증스러운 존재'로 봐야만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게 된다.
그들의 대표적인 논리에는 어떤 게 있을까? '동양인은 안 돼'부터 시작해서 '한국인은 안 돼', '우리나라는 안 돼', 그러다가 나중에는 '인간은 안 돼. 인간은 지구에 피해만 끼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만 해.'. 그리고 결국은 '인간에게 선이라는 건 불가능해. 다 인위적인 것이고 만들어낸 것이고 가짜야. 인간의 본성은 악이야.'라고 주장하고야 만다.
자세히 파고들어 보면 하나하나가 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근거로만 이루어져 있는 주장이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논리만 갖다대면서도 스스로가 굉장히 냉철하고 지적이며 다른 사람들이 차마 인정하지 못했던 차가운 진실을 밝혀내고 선뜻 인정해 버린 선구자라도 된 것마냥 의기양양해 한다.
여기서는 그 논리를 일일이 반박할 필요도 없이, 가장 흔히 그들이 빠지는 오류인 '성악설'에 대해서만 가볍게 논파해 보도록 하자. 이들은 인간이 보여주는 선한 모습들은 모두 인위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은 악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마치 인간의 몸은 본래 더러운 것으로서 인간이 깨끗이 씻고 정성스럽게 꾸민 모습은 모두 인위적인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몸은 하루라도 제대로 씻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금세 더러워진다. 이를 닦지 않고 머리를 감지 않고 샤워도 하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간다고 상상해 보라. 그 누구라 하더라도, 특히 더운 여름철에는 더더욱 빨리 몸이 더러워질 것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몸이 깨끗해지는 일은 없다.
인간에게는 이렇게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손을 씻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어린 자식에게 이렇게 자신의 몸을 씻는 방법을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도 꾸준히 자기 반성과 성찰, 사색과 고민, 명상 등을 통해 제대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더러운 것들로 금방 가득 차 버린다. 어떠한 자기 반성도 없이, 타인에 대한 어떤 조심성도 없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이주일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을 상상해 보라. 그 누구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마음을 관리해주지 않은 채 살아가면 그 마음은 결코 자연스럽게 깨끗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렇게 마음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하고 경계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인위적으로 좋은 글귀를 읽고 경전을 읽고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책을 읽으며 때때로 자기를 돌이켜 반성해 보기도 하고 '내가 혹시 잘못하고 있는 게 없나' 스스로 성찰해 보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부모라면 어린 자식에게 이런 마음의 유산을 물려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선은 인위적이고 악은 자연스러운 본성이다'라고 할 것인가? 이는 마치 '인간의 몸은 더러운 것이 그 본성이고, 씻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틀렸다!
'가만히 놔 두면 끊임없이 더러워지려고 하는 몸을 굳이 씻어내며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라는 말이 가능한 것처럼, '가만히 놔 두면 끝없이 더러워지기 쉬운 마음을 굳이 관리해 가며 최대한 선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라는 말도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일은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되는 일이 없다. 모두 내가 직접 손을 쓰고, 몸을 움직여서 이뤄내고 유지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자기 몸 하나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가? 그런데 이런 수고를 하기 싫은 사람이 한달 내내 씻지 않고 드러누워서 잠꼬대처럼 중얼거린다는 말이 '씻고 꾸미는 거? 그거 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행위일 뿐이야. 인간의 몸이란 말이야, 이렇게 더러운 기름이 흐르고 냄새가 나고 온몸이 간지러운 상태에서 버티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할 수 있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하루 이틀이나 정말 귀찮으면 일주일 정도는 안 씻는 사람을 견뎌 줄 수 있어도 일평생을 씻을 생각이 없는 사람, 게다가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 인간의 몸은 더러운 게 그 본성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견디고 같이 살아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몸이 아닌 마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눈에 띈다. 자신의 마음을 선하게 관리해 나간다는 것도 상당한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수고를 하기 싫은 사람이 '선하게 사는 거? 그거 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행위일 뿐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말이야, 이렇게 더러운 생각과 온갖 혐오와 비관적인 논리를 품은 채로 하루하루 그저 버티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할 수 있어.'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씻지 않아서 몸에 냄새가 나는 사람처럼 평생을 자기 반성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마음에서 냄새가 나는 사람과 누가 잠시라도 삶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하고 싶겠는가.
명심하라, 누군가는 평생을 '안 되는 이유'만 찾아 헤매며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 '안 되는 이유'를 통해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널부러져 있는 자신을 방어하려 하면서, 동시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뜨려서 거기에서 오는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항상 '되는 이유'만 찾아야 할 필요도 없고,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실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훨씬 더 많게 느껴질 때도 있고, 특히나 제대로 된 방법도 모르면서 억지로 뭔가를 하려다가 벽에 부딪혀서 '안 되는 이유'라도 찾아야 마음이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런 것까지 잘잘못을 따져 가며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잠시 위로를 받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그 '안 되는 이유'라는 정신적인 감옥에 갇혀서 평생을 '우린 안 될 거야'라는 한계 속에서 살아가거나, 그것을 타인에게 전파하면서 자기가 만든 정신적 감옥의 수감자를 더 늘리려고 시도한다면, 그 사람이 저지른 짓은 그 사람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이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이다. 빚이라는 것은 갚을 만한 정도로 관리해가며 사는 것이 좋지,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 스스로 결코 책임을 질 수가 없는 부채를 얻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라서, 다른 종은 꿈도 꿀 수 없는 복잡한 지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실재하지도 않는 정교한 감옥을 상상으로 만들어서 거기 들어가 앉은 다음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런 일을, 인간 외에 어떤 종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고귀한 지적 능력을 그렇게 허망한 데에 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잘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아주 매력적이고 즐겁고 때로는 뿌듯하고 가슴 벅찬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