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English, But Life
가끔 한국에서 오랜만에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그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영어 많이 늘었지?”
이 질문에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아이들처럼 월–금 학교에 가 하루 여섯 시간을 영어로 시달리거나,
남편처럼 회사에 취업해 여덟 시간을 영어로 써야 하는 환경이 아니라면,
미국에서 산다고 해서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한국보다 월등히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카운티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ESL 수업
개떡같이 영어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선생님들께 존경을 보낸다.
커피 한 잔 주문할 때
Can I get a latte?
식당에서 메뉴판을 가리키며
This one.
물건을 사거나 환불할 때 하는 몇 마디, 아니 거의 늘 한 문장. Can I ~?
병원 예약
이건 좀 허들이 있지만, 몇 번 해보면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몇 개월에 한 번… 아니, 일 년에 한 번쯤 가게 되는 은행.
*Thank you for speaking slowly.*를 외치게 만드는 직원분들은
항상 어딘가에서 나를 구원하려고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영어 사용은 반복성이 매우 떨어지고, 대부분 1회성 경험에 그친다.
돌아오는 길 "에잇!!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지만,
다음번 같은 상황에서 또 똑같이 어버버 거린다. 지난 번 어쩌다 경험하고 한참 같은 경험을 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도로는 영어가 늘지 않는다.
하지만 또 4년 전 여기 온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 늘었기 때문에 안 늘었다 말할 수도 늘었다 말할 수도 없어서..
너스레를 떨며 " 엄청 늘었지~~~~~장난 아니야~~~~"라고 해 버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생각하지 못했던 능력들이 자랐다.
영어보다 먼저, 생활이 변했다.
1. 운전
결혼하고 거의 15년을 서울 동작구에서 살다가 미국에 왔다.
동작구는 인구밀도가 서울 평균보다 높은 곳이라, 항상 차가 꽉 막혀 있다는 느낌을 주는 동네다.
교통체증이 두려워 특히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주말엔 거의 운전을 안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걷는 것도 좋아해 한 두 정거장 거리 정도는 가뿐하게 걸어 다녔다.
하지만 내가 사는 미시건은 차 없이 커피 한 잔도 사 먹기 힘든 곳이다.
매일 운전하니 안 늘 수가 없다.
모든 하루의 시작은 차고에서 차를 빼면서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일단 운전대에 손을 얹어야 한다.
특히 눈 오는 날엔 " 내가 한국 돌아가면, 핸들도 안 잡는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2. 소분 및 정리
재래시장을 지척에 둔 동네에 살았기도 했고,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니 ( 텅~비어있는 냉동실을 볼 때마다 엄마는 이게 아이들 키우는 집에서 맞는 거냐며 경악했다....)
항상 오전 운동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그날 해 먹을 재료를 사와 요리했다.
하지만 이곳은 사정이 다르다.
요리하다 간장 떨어졌다고, 바로 슬리퍼 신고 달려나가 사 올 수가 없다 보니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에, 또 간 김에, 세일이라 이것저것 사 오게 된다.
그러니 잘 정리하고 잘 적어놔야, 잘 해먹을 수가 있다.
여전히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한 것이 꼴 보기 싫어 죽을 맛이다. 하지만 받아들어야 한다.
3. 자급자족
난 늙어서도 과보호를 받고 살았다.
시어머니는 항상 "내가 해 줄게."라고 하셨고, 엄마는 " 일단 내가 해줄 테니 나중에 배워."라고 하셨다.
엄마 말대로 나중에... 이곳에 와서 배웠다.
다행히 시어머니가 하시는 것, 엄마가 하는 것을 매번 옆에서 눈으로만 봤어도 공부가 된 것인지 그럭저럭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음식을 살려주는 코인 육수, 액젓, MSG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김치도 하고, 떡도 쪄보고, 묵도 쑤어 보고, 요거 저거도 말려 보고한다.
매일 하다 보니 안 늘 수가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다 사 먹을 거다.
4. 운동
이곳에서 잘 지내려면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몸이 좀 아프다고, 편하게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거나 한의원에 가 침을 맞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형외과에 한 번 가보려고 예약한 뒤 챗 지피티하고 의사와의 Q&A를 연습했는데 무려 A4 7장 분량이었다.
(몸도 아파 죽겠는데, 말하는 연습까지 하고 가야 한다니.......)
근육을 키워서 이런 불상사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또 아무리 부정해도 이곳에 살면 우울해지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뭐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여기 와서 영어 못한다고 이런 설움을 겪어야 하나부터...
내가 앞으로 여기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까지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온다.
그걸 막는 방법은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뿐이다.
이건 어디에 살 든 매일 내가 해야 할 일이다.
5. 품앗이
이곳에서 살면서 받은 가장 기쁘고, 너무 귀한 선물은 직접 만든 반찬이다.
다들 낯선 타향에서 살면서 바쁘고, 정신없는데 그들의 시간과 노동, 정성을 담아 주는 것이니
받을 때마다 감동하게 된다.
내게 미국에서 산다는 건 예상치 못한 순간, 누군가의 위로와 나도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따스함,
여기서도 좋은 사람들과의 연대가 가능하다는 희망이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을 준다.
한국에 살았을 때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있으니
돌아가게 된다면 콩나물을 무쳐도 나누어 먹을 것이다.
결국 영어가 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매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것들은 매일, 정성껏 해 왔다.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 “영어 많이 늘었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응, 영어도 늘었고.
대신 다른 것들은 훨씬 더 많이 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