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의 책_ Song for a Whale

소통과 덕질에 관하여

by Dining Table Writer


2월에 4권의 영어책을 읽고 있는데,


그중 단연 내 맘을 사로잡는 것은 이 Song For a Whale이다.










이 책은 소통에 관한 글이다.



청각장애 소녀 아이리스와, 실존 52헤르츠 고래에서 영감을 받은 가장 외로운 고래 Blue 55.


서로 다른 주파수로 노래하는 존재들이 결국은 소통하는 법을 찾는 이야기이다.


https://youtu.be/Q4zGRKbnVh8?si=Blb3QerEWrVqCsFD







이 책의 주요 콘셉트는 소통이지만, 내게 이 책은 두 가지 화두를 던져 준다.


"소통과 덕질"



같은 언어를 쓴다고 소통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ESL 수업을 가면 남아메리카 각지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 스페인어를 구사하여 원활하게 서로 소통이 될 것 같지만, 고국이 어디냐에 따라 그들의 캐릭터가 다 다름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그들 나라만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는 걸 지켜볼 수 있다.


한 번은 내가 "한 나라 안에서도 수많은 지방 사투리가 있는데, 스페인어라고 다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렇지?"


라고 하니 "응 얼추 알아듣는 거야."라고 말했다.



"얼추 알아듣는다."


미국에 오니 사람들을 만나서 영어로 이야기할 때 얼추 알아듣는 것이 나도 기본값이 되었다.


모국어처럼 또렷하게 들리는 걸 소통하는 걸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성향과 맞추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 누구하고도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이게 소통의 기본값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와 소통이 잘 된다고 느낀다면, 그건 상대가 나를 맞추어 주거나, 이해하려 하거나, 받아주려 하는 배려가 깔렸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원래 덕질 예찬론자이다.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은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덕질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10대 시절 동네 우일 비디오 가게의 최우수 고객이었다고 단언할 만큼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았고,


그 당시 양대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를 매달 사 관심 있는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영화를 통해 가진 관심 가진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냥 내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지 하는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돈 쓰고, 시간 낭비하고,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줄 알았던 그 덕질이


오십이 된 지금,


얼추 알아들으며 간신히 소통하는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들이 하는 영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문장 속 영화 제목과 주인공 이름은 기막히게 들렸고,


소설과 작가 이름도 바로 알아들었다.



10대의 덕질이 30년이 지난 후 빛을 발했으니 생산성만 따지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틀림없다.



덕질이 왜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같은 취향은 비슷한 성향임을 알려준다.


내가 좋아했던 것을 좋아했거나,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심스러운 탐색의 시간을 건너뛰게 하고,


곧장 밀도 높은 친밀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이곳이 내가 속할 곳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러면서 다시 나의 정체성이 재구성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를 규정하는 여러 요소 중 내가 좋아하는 덕질도 주요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리스의 덕질은 그저 자신이 매료된 것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꽉 막혀 있던 주변 선생님, 학교 아이들과의 소통의 창구가 된다.



또한 덕질을 계속하다 보면, 소통 없는 덕질만으로는 풍요로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두 가지가 내 안에 공존할 때 내적 즐거움과 현재를 사는 재미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나는 그것이 덕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해지는 그 순간,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꼭 어딘가에 있고


내가 보내는 주파수를 기막히게 알아듣는다.



소통이란 것은 모든 이들과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내 주파수를 알아듣는 사람들과의 교감이다.



나의 비생산적인 덕질이 계속되길.


그래서 나를 잃지 않길.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나를 찾아주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미국에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