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정성이 아니다.

책 <곤란할 때 옆집 언니>에게 보내는 헌사

by Dining Table Writer


"곤란할 때 옆집 언니"란 에세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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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로서 내게 정체성을 확립시켜준 이 책은 아쉽게도 현재 우리 집에 없다.


2022년 미국에 오기 직전에 읽었는데, 이 책은 내가 소장해야 할 책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믿으며 옆 동 나처럼 살림 그럭저럭하는 아줌마에게 넘겼다.


그녀가 읽고 같은 감동을 얻어 또 다른 아줌마에게 전달하길 바라며...



각자가 가지고 있던 살림 강박이나 죄책감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길 바라면서.



쉽고 편하게 쓰인, 척해 보이려는 의도라곤 없는, 그래서 더욱 나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준 책이다.



지금 그 책이 몇 동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주인을 찾으며 책장에 꽂혀 있는지, 그것도 아니라 어디 폐지 수거함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그 책을 소유하기보다 흘려보내는 쪽을 택했다. 그게 그 책의 역할이라고 믿었으니까.



특히 <살림은 정성이 아니다. >라는 챕터는 거의 나를 울렸다.



결혼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살림을 한지 거의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나는 여전히 살림이 하기 싫어 대충 하고 있다는 것에 속으로 꽤나 심적 갈등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나는 살림에 정성이라는 나의 에너지를 몰빵할 순 없었다.


나의 정성을 기다리는 다른 것들이 매일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강박은 분명 엄마에게서 받은 문장이었다.


나의 엄마는 전형적인 정성형이고, 나는 완료형이다.



나의 엄마는 육수를 내고, 새로운 식재료를 시도하고, 몸에 좋다는 방법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내가 살림에 큰 정성을 쏟지 않는 태도를 늘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어릴 때도 말 더럽게 안 듣던 딸이, 컸다고 달라질 리 없었다.




난 그럴 수 없었다.


나의 우선순위는 오늘 해야 할 나의 To Do 리스트의 "완료"였다.



22년 겨울,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MSG를 찌개에 넣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마음은 한 결 가벼워졌다.


현재 난 식구들을 위해 세 끼를 준비하지만 최고의 밥을 고민하진 않는다.


냉장고를 스캔하고, 스케줄을 고려해 양배추 쌈인지 제육볶음인지 결정할 뿐이다.


빨래는 밀리지 않게 세탁기 동작 버튼을 누른다.


나는 그 어떤 기기가 개발되어도 세탁기만큼 여자의 삶을 바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청소는 로봇청소기에게 맡긴다. 이 책에서도 말했듯, 나 역시 이 기계들에 찬사를 보낸다.



그렇다면, 살림에 정성을 쏟는 대신 너는 무엇을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사실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은 나의 엄마뿐이다.


엄마에게는 “놀아.”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엄마는 분노한다.


어떤 대답을 해도 정해진 수순은 잔소리인데,


뭐 하러 내 정성을 그 대답에 쏟아야 하나.



실제로는 난 읽고, 쓰고, 운동하는데 나의 정성을 할애한다.


내가 가족을 위해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 내가 진심으로 하고픈 데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변명거리와 회피 이유를 원천 차단한다.



정성을 쏟는 대상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선택이고, 선택한 것을 어느 비율로 쪼개 나의 정성을 쏟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누구도 그 선택을 비난할 수 없고, 평가할 수 없고, 지적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정성을 하루 단위로, 또 그 하루 안에서 아주 잘게 쪼갠다.


그리고 그 정성을 “물리적 시간으로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치화한다.


한쪽에 너무 많은 시간이 쏠린다 싶으면, 그 무게를 가볍게 만들 방법을 찾는다.



누군가(엄마?)는 말할 것이다.


살림하는데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냐고.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나는 그냥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넘치는 사랑으로 한 곳에 정성을 몰빵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대신 하루의 균형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정성을 쪼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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