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s Way 2주차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 - 2주 차 : 정체성을 되찾는다.

by Dining Table Writer


2월엔 아티스트 웨이 2주 차, 멤버들과 함께 정체성을 되찾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책에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강조했는데,


같은 책을 읽었지만, 우리에게 아이디어를 준 문장과 단어는 모두 달랐다.



나는 '바른 정신 갖기 -Going Sane'부분과 '해로운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다른 멤버는 '창조적인 삶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Attention'파트에 주목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책의 순서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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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른 정신 갖기


요새처럼 나의 삶에 확신이 찬 적이 없다.



모든 것이 선명하고, 잘 될 것이란 긍정적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은 없지만, 이 안갯속을 걷는 이 막연함이 답답한 상황으로 다가오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다.



손으로 앞의 장애물이 있나 없나 확인하기 위해 정신없이 휘젓고 있지만,


두려워 덜덜거리면서도 발은 성큼... 아니고 살짝 내딛는다.



그냥 살짝 내디디면 그걸로 된다는 확신이지, 안개가 걷히고 있다는 확신이 아니다.


그런데 확신이 강해질수록, 허튼짓 같고, 돈 안 되는 짓을 그냥 화악 저지르고 싶은 욕망이 올라온다.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겠다고 주변에 말하게 된다.



아이러니하다. 바른 정신-sane 이라는데 오히려 누군가의 관점으론 insane 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국문서에선 바른 정신 갖기라고 번역했지만, 영어책에선 Going Sane이라고 표현한


작가의 의도가 완전히 이해된다.







Going sane는 ‘바른 정신 갖기’가 아니라, 위태로운 나를 끌어안고
제정신 쪽으로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다.




2. 해로운 친구들


"Do not expect your blocked friends to applaud your recovery.


창조성이 막힌 친구들이 당신의 회복에 박수를 보내줄 것이라 기대해선 안 된다."p.43



나도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며 창조성이라곤 없는, 나의 허튼짓을 제일 이해하지 못하는


이 책에서 말하는 해로운 친구, 나의 남편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그 해로운 친구-나의 남편 덕에 나의 창조적인 시간을 확보하며 살고 있다.


그 해로운 친구 덕에, 어찌 보면 삶에서 사치스러운 영역일 수도 있는 나의 창조성에 대해 사유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그건 해로운 친구인가 이로운 친구인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으면서 따뜻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로운 친구로 칭할 것인가?


나는 해로운 친구들이라는 이 부분을 강하게 부정한다.



내 안의 창조성을 부정하고, 타인의 삶을 책임지는 자들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오히려 그들이 너의 창조성 회복의 과정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고민하는 것이 더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의 삶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의 여정을 함부로 말한다면, 그건 분명 해로운 친구이다.



3. 정신을 빼놓는 친구들


이 챕터에서 나를 포함 멤버들 모두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 정신을 빼놓는 친구가 혹시 나 자신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창조성과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이들이 아니라 나를 경계하라.



4. 내부의 걸림돌 (회의주의)


우리는 우리를 안다.


우리는 거창한 꿈 대신, 하루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려 애쓰는 평범한 아줌마들이다.


우리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탈 자신은 없으나, 잔잔한 물결 위에 작은 배를 올려놓고 노를 젓는 수고로움은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고여 있는 물속에서 어찌할 바가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니, 우리에게 스스로에게 갖는 회의는 조금은 먼 이야기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조금씩 근육이 생기는 노젓기는 멈추지 않는다.


내 안에 희망을 품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회의주의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5. 창조적인 삶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과거를 생각하면 너무 괴롭고,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 두려우니 현재에 집중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우리의 이야기는 관심 가는 것이 없더라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더라도


"일단 한다."로 2주 차 모임을 마무리했다.


하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지더라도 " 나는 한다. "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잘하는 일인지 모르더라도 하면서 정체성을 찾는 것이 답이라고 우리는 결론 내렸다.



일단 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정체성을 되찾는 이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안에는 분명 작은 앓이가 있다.


지금 내가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외면한 채 이 앓이에 집중하는 일은 때로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일단 한다"라는 말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몰입하라는 뜻이 아니다.


전심을 다 쏟으라는 선언도 아니다.


그저,


조금 앓아보겠다는 허락이다.



오늘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했다면 괜찮다.


그 일로 인해 마음을 조금 앓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은 이미 창조성 회복 중이다.



3월엔 아티스트웨이 3주차 힘을 회복하는 과정을 이야기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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