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에서 숨죽이며......
그곳이 나의 자리

엄마라는 역할에 고충을 느끼는 이유

by Dining Table Writer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 조명에 불이 들어오며 연극의 막이 오른다.


배우들이 하나 둘 나와 자신들의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연기에 따라 이 연극의 실패 여부가 달려 있으므로


연출자와 극작가는 무대 뒤에서 쫄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 모든 순간을 지켜본다.




하지만 배우의 연기가 무너질 듯 흔들려도,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은 무대에 올라갈 수 없다.



"그 순간 무대는 배우의 것이고, 그 흔들림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도 그들뿐이다."


엄마라는 역할이 딱 이런 듯한다.


연출이나 극작가에 엄마를 비유하면 마치 아이를 뒤에서 조종하고,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다루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내가 연출가가 되어 한 편의 연극을 올린다고 치자.


연습 또 연습, 예상치 못한 문제들, 수많은 의사결정들, 밀려드는 두려움, 결과는 예상보다 더 참담한 실패,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 좌절감이 밀려와도 그것을 감추고 다시 배우에게 같이 해보자라고 말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이런 것이다.


모든 여정을 그 옆에서 함께 한 엄마는 자신이 한 노력과 감당한 불안이 적지 않으니


내 아이에게 원하는 기대치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기대치를 나의 성과로 만들 공식적인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아이에게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 기대치만큼 나는 나의 에너지를 아이에게 많이 할애한다.


그리고 나의 욕망도 적지 않게 투영한다. 그러다 보니 마리오네트처럼 아이들이 행동해 주길 원하게 된다.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싶어 한다.


통제는 빠르게 결과를 낸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연기가 아니라, 나의 연기가 된다.


무대 뒤에 있어야 할 내가 조명을 받으면 그 무대는 완전히 망친다.


그래서 나는 멈추고, 통제하고픈 나의 욕망을 통제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나의 배우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내 예상과 다른 연기를 펼쳐도


그건 그 배우의 선택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게 나의 역할이니깐.




그럼 연극을 망쳐버린 그 배우와 대면했을 때 나의 행동은 어떠해야 할까?


여기서 나는 연출자도 극작가도 아니고 엄마로 돌아가야 한다.


따뜻한 밥을 먹이고, 잊어버리라고 말하며 등을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그 배우보다 내가 더 속으로 무너졌지만, 그것을 절대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무대에 서지 않았으니 그 실패는 나의 것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나의 실패가 아니니, 나의 실패인 양 아픔을 드러낼 수 없다.




내가 배우인 줄, 연출가인 줄, 작가인 줄 혼동하기 너무 쉬운 자리


나의 정체성이 뭔지 알 수 없어 매우 위험한 자리가 엄마라는 위치이다.





무대를 망치지 않기 위해 나는 무대 뒤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연극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그 누구보다 열렬히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내가 그 무대에 어떤 지분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즐긴 사람처럼....




오늘 공연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길 기대하며 오늘도 무대 뒤에서 숨죽이며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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