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순간이고 믿음은 방향이다.
지난달 50세가 되었다.
나는 이제 운명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내 성격이 원래 그래."라고 내 행동을 변명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동시에 사람 절대 안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나이가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에 대한 의문은
누구도 답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 나이가 되어도 계속하는 질문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이 제일 아깝고, 지나면 절대 회복할 수 없는 자원이란 걸 알았다.
마지막으로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은 오롯 믿음의 영역이란 것을 알고 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분
누가 나를 지지한다는 느낌, 내게 질투를 느끼는 듯한 분위기
나의 미래가 그렇게 어둡지 않다는 확신,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결국 거의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사랑받는다는 느낌도, 미움받는다는 두려움도,
희망과 절망도 대부분 내 안에서 소용돌이칠 뿐이다.
또 실제로 누군가에게 내가 미움받거나 비난받는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영역이지.
그건 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버려둔다.
나의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상대의 믿음을 바꿔보겠다는 허황된 생각에 소비하지 않는다.
나의 믿음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나를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전에는 나의 기분과 느낌이 정확한 사실이라 믿고,
거침없이 내 안의 모든 것을 드러냈다.
분노가 치솟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사랑을 느끼면 더없이 행복해하고, 비난받는다 생각하면
너의 비난을 틀렸다 거침없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어떤 것은 정확히 맞았고, 나머지는 완전히 틀렸다.
정확히는 대부분 다 틀렸다.
내가 그렇게 왜곡하고, 멋대로 정의하고, 필터를 거치지 않는 나의 모든 감정을 드러냈다.
그게 솔직함이라고 착각했다. 에너지를 너무 의미 없는 곳에 소비하니 정작 나를 위해 써야 할 때는 아무 힘도 남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믿음의 영역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왜 나는 지금 이 순간 기분을 살피는 것보다 믿음의 영역을 의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기분은 순간이고 믿음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내가 오늘도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무언가가 아주 미미한 것임에도 매일 할 수 있는 힘은
이 미약한 것이 결국 내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미래는 뿌연 안갯속 그 자체다. 아무리 그려보려 해도 그려지지 않는 것이 미래다.
그럼 적어도 내 손에 하나의 낡은 나침반이라도 있어야 나아갈 수 있는데,
나는 믿음이 그 역할을 해 준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하루를 순간의 기분에 압도되지 않고
믿음의 영역이 가리키는 방향만 확인하며 걸음을 내딛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