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2. 2023
일산 '더 총명한의원'
이러면
곤란합니다.
다른
한의원은
어쩌라고요!
ㅡ
병원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 대부분은
환자이다.
그들은
웃지 않는다.
아니
웃을 수가 없다.
모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통을 호소하며
울상이다.
이들을
보듬어야 할
간호사는
데스크에
형사처럼 앉아
다가가는 순간
간호사는
마치
피의자를
취조하듯
앙칼진 목소리로
묻는다.
"처음 오셨습니까?
어디가 아프십니까?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를 적으시고
저기에
앉아 기다리세요."
전국 병ㆍ의원이
모두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멘트가 똑같다.
이
순간
병이
악화된다.
ㅡ
일산 '더 총명한의원'
은
달랐다.
그 이름처럼,
방문하는 이들에게
지혜와 치유를 선물하는
곳이다.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
넓고 쾌적한
실내 공간,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그곳,
단아한 모습의
간호사가
상냥하게 맞이한다.
이처럼
병원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내면의 고요함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했다.
간호사의 밝은 미소와
상냥한 말투는
불안과 긴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냈다.
그의 따뜻한 환영은
마음의 문을
열고,
치유의 공간으로
한 걸음
더 내딛게 했다.
그렇게
나는
'더 총명한의원'의 품으로
조심스레
다가섰다.
간호사의
안내로
원장실을 노크했다.
원장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의 맑게 빛나는 눈빛은
지식과 경험이라는
깊은 바다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녀의 안경 너머로
내다보는 시선은
차분하고
진중했으며,
언어의 선택에서조차
섬세함과 신중함이
묻어났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나의 귀를
사로잡았고,
나의 마음은
어느새
무장해제 됐다.
그곳에서
나는 한의학의 전통과
현대의 과학이 만나는 접점을
발견했다.
치유는
단순한 증상의 해결을
넘어,
생활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예술이었다.
원장과
그곳의 모든 이들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았다.
나는
더총명한의원을 찾은 것이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건강의 문제는
우리의 신체적 존재에
국한되지 않음을,
그곳에서
나는 배웠다.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 총명한의원'을 나오면서,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나를
더 건강하고,
물론,
더 총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
품었던 기대가 현실이 되었고,
그것은
단순한 치유를 넘어서,
내 삶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ㅡ
바란다.
이글이
일산 '더 총명한의원'에
시기심이 아니라
모든
병ㆍ의원 및 서비스 기관에
귀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