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 닳도록 캐낸 밭고랑의 냉이
박철언 시인의 '봄, 오일장'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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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오일장
박철언
모진 강풍과 폭설에 더디게 오는 봄
한 줌 볕, 산중턱에 뿌리내린 달래
손톱 밑 닳도록 캐낸 밭고랑의 냉이
할머니 손때 묻은 소쿠리에서
서로서로 기대어 졸고 있다
이마의 주름살만큼이나 깊게 패인
세월의 흔적
닷새마다 장거리에 나서는 일
낯익은 얼굴들이 그리워서라며
오늘도 장 모퉁이에 앉아
접힐 듯 굽은 등을 몇 번이나
일으켜야 할까
풋것들 위에 검버섯 피어난 주름진 손
때 묻은 정 덤으로 얹어 팔아도
썰렁한 장마당
볕살 눈부신 장거리 바쁜 발걸음들
허허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노곤한 하루는 길기만 하다
ㅡ
박철언 시인의 '봄, 오일장'은 일상의 단면을 통해 인간 삶의 깊이와 넓이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봄의 오일장을 배경으로, 일상의 고단함과 자연의 순환,
그리고
인간 존재의 무게를 섬세하게 펼쳐낸다.
시적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감동과 사색의 여지를 제공하며,
삶과 자연,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첫 구절부터 시인은
"모진 강풍과 폭설에 더디게 오는 봄"으로
봄의 도래를 알린다.
이는 자연의 순환과 변화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상징하며,
봄이 오는 과정의 느림을 통해 인내와
기다림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어지는 "한 줌 볕, 산중턱에 뿌리내린 달래"와 "손톱 밑 닳도록 캐낸 밭고랑의 냉이"는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노동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은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시는 또한 세대 간의 연결고리와 전통의 소중함을 "할머니 손때 묻은 소쿠리에서 서로서로 기대어 졸고 있다"라는 구절로 표현한다.
여기서 소쿠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이자 전달체로 기능한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소쿠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상징으로, 인간관계의 따스함과 정을 전달한다.
이 시에서
오일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닌,
인간 삶의 축소판으로 등장한다.
"이마의 주름살만큼이나 깊게 패인 세월의 흔적"은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겪는 삶의 여정을 상징하며, 오일장을 찾는 사람들의 삶은 각자의 이야기와 역사를 담고 있다.
이러한 깊이 있는 삶의 여정을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시간과 삶을 사려 깊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또한,
시는 "풋것들 위에 검버섯 피어난 주름진 손"과
같은 구절을 통해 노년의 삶과 그 속에서의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할머니의 손은 시간의 흐름과 삶의 무게를 상징하며,
이는 노년이 지닌 내밀한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드러낸다.
시장에서의 외로움과 허허로움 속에서도,
할머니는 삶의 가치를 지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봄, 오일장」은 자연의 순환,
인간의 노동과 삶,
그리고 세대 간의 연결을 통해 깊은 의미와 사색을 전달한다.
시인은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언어로 삶의 다양한 면모를 포착하고, 그 속에서 인간적인 따뜻함과 연대의 가치를 발견한다.
장마당의 썰렁함과 볕살 눈부신
장거리 바쁜 발걸음들 속에서,
할머니의 노곤한 하루는 길기만 하다는
마지막 구절은,
현대 사회에서의 소외와 삶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독자에게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와 효율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며,
인간관계와 자연,
그리고 삶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삶의 무게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인은 자연의 순환과 인간 삶의 깊이,
세대 간의 연결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봄, 오일장」은 삶의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동시에,
삶의 깊이를 탐구하는 시적 여정을 제시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사유할 기회를 제공하며,
인간적인 연대와 사랑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시인 박철언의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도전과 고민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지침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