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pr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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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종달새 그리고 쑥개떡
청람
봄바람이 보리밭을 훑고 간다
햇빛은 이삭에 입맞춤을 남기며
종달새의 노래는 기쁨을 들려준다
초록의 파도 속에서 봄이 웃는다
어머니는 논두렁 따라 걸으시네
둔덕에서 쑥을 한 움큼 뜯으시고
향기로운 쑥개떡을 빚으실 때
그 손길에서 봄이 속삭인다
부엌은 쑥내음으로 가득 차고
어머니의 앞치마는 흙으로 범벅이다
쑥개떡 한 조각 입 안 가득 품을 때
마음은 봄의 서약을 기억한다
식탁에 가지런히 놓인 쑥개떡
그 맛에서 옛 적 이야기 피어난다
어린 시절 뛰어논 추억, 그 속에서
봄의 노래는 계속된다
보리밭의 종달새는 시간을 잇고
어머니의 쑥개떡은 세대를 잇는다
이 봄, 이 노래, 이 맛으로
우리는 다시 봄을 맞이한다
자연의 순환 속 새로운 계절을 열며
봄이라는 신호탄, 어머니의 손에서 시작된다
보리밭 사이 치솟는 종달새
매년 이 봄을, 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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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봄날의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햇살이 은은하게 내려앉은
보리 이삭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종달새가 즐겁게 지저귀고 있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의 목소리처럼 반가워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이른 봄, 자연은 그렇게 겨울의 끝을 알리고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예고한다.
어머니는 논두렁 옆 작은 길을 따라 걸으시며,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땅은 아직 차가운 겨울의 기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지만,
생명이 움트는 기운은 어김없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거친 손은 쑥을 캐는데
바쁘다.
신새벽부터 시작된 일손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한아름의 쑥이 바구니 안에
가득 차 있다.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흙 묻은 앞치마를 툭툭 털고,
부엌으로 향한다.
쑥의 향긋한 냄새가 부엌을 가득 메우며,
봄의 전령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태어난
쑥개떡은
마치 봄의 정수를 담은 듯,
그 색과 냄새, 맛에서
모두 봄을 느낄 수 있다.
쑥을 씻고, 다져서 반죽에 섞는 일련의 과정들은
솜씨 좋은 어머니의 손길이 빚어내는 예술 작품이다.
식탁 위에
한 줄로 가지런히 놓인 쑥개떡은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이다.
따뜻한 녹차와 함께 내어놓으시면,
그 맛은 더욱 깊고 진하다.
쑥개떡 하나가 입 안 가득 퍼지며 전하는 쑥 향기는,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일깨워 봄이 왔음을 알린다.
이런 맛과 향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오롯이 어머니가 계신 우리 집만의 특별한 선물이다.
매년 봄이 오면,
보리밭 길을 거닐며
종달새의 노래를 듣는 것은
내게 있어 소중한 의식과도 같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어릴 적 뛰어놀던 추억들,
논두렁에서
쑥을 뜯던 어머니의 모습,
부엌에서 부지런히 쑥개떡을 만드시던 그 손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모든 추억들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토대이며,
봄마다 반복되는
이 의식들이 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