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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pr 21. 2024

나의 아버지 박목월,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의 희생과 배려







         나의 아버지

         박 목 월

        그리고

        어머니







내가 6살 때였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었는데...

아버지는 글이 쓰고 싶으셨는지 저녁을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 상을 가지고 오라 하셨습니다.

책상이 없었던 아버지는 밥상을 책상으로 쓰셨습니다. 

어머니는 행주로 밥상을 잘 닦아서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책상에 원고지를 갖다 놓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나에게 세 살 된 여동생을 등에 업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불 같은 포대기를 덮고 

"내 옆집에 가서 놀다 올게" 하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글 쓰는 아버지 등 뒤에 붙어 있다가 잠이 들었죠. 

얼마를 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깨워서 눈을 떠보니까 아버지였습니다.

"통금시간이 다 되어도 어머니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나가서 어머니를 좀 찾아오너라."

나는 자던 눈을 손으로 비비며 털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는데 밖에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였고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집 저 집 어머니를 찾아다녔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집으로 돌아 오려다가 갑자기 어머니와 제일 친한 아주머니가 아랫동네에 살고 계신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집에 한 번만 더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전봇대가 있고 그 전봇대 옆에 나보다 더 큰 눈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눈사람 곁을 스쳐 지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동규야~" 하고 불렀습니다. 

보니까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철철 맞으며 머리에 쓰고 있던 보자기를 들추면서 "너 어디 가니?"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볼멘소리로 "어머니를 찾아오라고 해서 아랫동네 아줌마 집에 가는 중입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는 갑자기 내 귀에다 입을 대고 물었습니다.


"네 아버지 글 다 썼니?"


나는 고개만 까딱 거렸습니다.

어머니는 내 등을 밀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삽니다. 


세월이 갈수록 내 머릿속엔 몇 시간씩이나 눈 구덩이에 서서 눈을 맞으며 세 살 된 딸을 업고 계시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세 살 된 내 여동생이 아버지가 시를 쓸 때 울어서 방해가 될까 봐 그렇게 어머니는 나와서 눈을 맞고 서 계셨던 겁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을 다닐 즈음에~ 조금 철이 들어서 어머니에게 한번 물었습니다.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돈도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고. 그런데 어머니는 뭐가 좋아서 밖에 나가서 일도 하고 힘들게 고생하면서 밤에

애를 업고 밖에 나가 있었어?"


나는 어머니가 우리 집 생활을 끌고 가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래도 니 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시를 다 쓰고 나면 발표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나보고 읽어보라고 해"하고 웃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어가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시한 편을 읽어보라"하는 아버지의 배려의 힘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은 이런 배려를 통해서 서로 사랑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박목월 시인 아들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어느 폭설이 내리던 겨울밤, 6살 소년 동규는 자신의 아버지, 박목월 시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인은 밥상을 책상 삼아 원고지 위에 연필을 깎으며 글을 쓰고 있었다. 어머니는 집안의 큰 일을 처리하는 듯, 아버지의 작업을 돕고, 어린 동생을 돌보며 집을 이끌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동규에게 동생을 업으라 요청했고, "내 옆집에 가서 놀다 올게"라며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집을 나서 밤새 눈보라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녀의 결정은 동생의 울음이 아버지의 창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섬세한 배려였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는 잠에서 깬 동규에게 어머니를 찾으러 가라고 지시했다. 동규는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어머니를 찾아 헤맸다. 마침내, 어머니는 눈사람 옆에서 "동규야~" 하고 부르며 그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눈을 맞으며 동규를 안심시켰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동규는 세월이 흘러도 이 사건을 잊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가 겪은 고통과 희생을 이해하게 되었고, 어느 날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을 다니던 시절, 어머니에게 그날의 힘듦에 대해 물었다. 어머니는 웃으며 "그래도 니 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시를 다 쓰고 나면 발표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나보고 읽어보라고 해"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배려의 힘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런 배려를 통해서 서로의 사랑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동규의 회상은 부모님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담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가족 간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사랑과 배려는 가족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며, 이는 세대를 넘어 전해져야 할 가치이다.


이 가치들은 세대를 초월하여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동규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당시의 느낌과 어머니의 행동이 지닌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

우리 모두가 각자의 가족 이야기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야 한다.


동규의 어머니는 단순히 아버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녀는 가족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일상의 선택을 넘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깊은 사랑과 헌신의 표현이었다.


박목월 시인 역시 이러한 배려를 알아보고,

그의 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특별했다. 작품을 완성한 뒤 그녀에게 가장 먼저 읽어보도록 하는 것은, 그녀의 노력과 희생이 그의 창작 활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정하는 행위였다. 이는 단순한 배려를 넘어서, 상호 존중과 인정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가족 구성원 간에 깊은 유대감과 이해를 만들어낸다.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서로를 배려하고 지원하는 건강한 가족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동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족의 사랑과 배려가 어떻게 세대를 이어가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모님의 희생과 배려가 자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자녀의 인생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있게 통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은 배려를 통해 더욱 깊어진다. 박동규 교수의 회상은 우리 모두에게 가족을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귀중한 교훈이 된다.

가족 각자가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 사랑이 커져 결국에는 모두가 서로를 위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배려의 힘'이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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