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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엽 시인의 시 '아버지'를 청람 평하다

시인 채성엽 청람 김왕식









아버지


시인 채선엽




하얀 모시적삼 단정히 입으시고
양반다리 책 읽으시던 아버지

아버지 가시는 곳마다
쫄쫄 따라다니며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

“우리 딸 말 대답해 주느라 배고프네.”
허허 웃으시던 인자하신 아버지

쌀쌀한 늦가을
초가지붕 이엉 엮으시며
들려주시던 말씀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난 사람이 되지 말고
된 사람이 되어라.”
“알아도 모른 체
남보다 너무 잘난 체 말아라.”

아버지 마음 밭에서 우러나온
보약 같은 사랑의 말씀
삶의 등대가 되어
지금도 내 길을 비춰 준다.

하시고 싶은 말씀 많아도
침묵을 금으로 여기시던 아버지

말씀하시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셔서
청력의 기력이 다해지신 듯
이제는 내 입모양 살피시며
보청기 끼우신 귀를
내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대신다.
재잘재잘 떠들던
내 얘기가 듣고 싶으신가 보다.

어느덧 구십 계단 주름진 세월
내 물음 답해 주시느라
배고프시다던 아버지께
“아버지 물음 답해 드리느라 배고파요.”
투정 부리고 싶어도
들으실 수 없어 말할 수가 없네.





청람 김왕식



이 시는 채선엽 시인의 시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회상하며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아버지와의 추억과 아버지의 가르침, 그리고 아버지의 현재 모습을 통해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연에서 "하얀 모시적삼 단정히 입으시고 양반다리 책 읽으시던 아버지"라는 구절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아버지의 외형적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얀 모시적삼은 전통적인 한국 의상을 상징하며, 단정함과 청결함을 나타낸다. 양반다리로 책을 읽는 모습은 고요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아버지의 학문적 열정을 강조한다. 이 구절은 아버지의 외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내적 성품까지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는 "아버지 가시는 곳마다 쫄쫄 따라다니며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라는 구절로 시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여기서 '쫄쫄 따라다니며'라는 표현은 시인의 천진난만한 호기심과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나타낸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성장하는 시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우리 딸 말 대답해 주느라 배고프네."라는 아버지의 말은 유머와 따뜻함을 동시에 담고 있어, 아버지와 딸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세 번째 연에서는 "쌀쌀한 늦가을 초가지붕 이엉 엮으시며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통해, 아버지가 일상적인 노동 속에서도 중요한 삶의 지혜를 나누어 주셨음을 강조한다. 특히,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말은 삶 속에서 누구나 배울 점이 있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이는 겸손과 배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아버지의 지혜를 나타낸다.

네 번째 연에서는 "아버지 마음 밭에서 우러나온 보약 같은 사랑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버지의 말씀이 단순한 조언이 아닌, 시인의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가르침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보약 같은 사랑의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이 시인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구절은 아버지의 가르침이 시인의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어 준 등대와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섯 번째 연에서는 "하시고 싶은 말씀 많아도 침묵을 금으로 여기시던 아버지"라는 구절로, 아버지가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이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아버지의 신중함과 깊이를 암시한다. 또한, "말씀하시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셔서"라는 구절은 아버지의 경청하는 자세를 강조하며, 이를 통해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제는 "청력의 기력이 다해지신 듯"한 상황은 시인의 마음에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남긴다.

마지막 연에서는 "어느덧 구십 계단 주름진 세월"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아버지의 연로하신 모습을 묘사한다. "내 물음 답해 주시느라 배고프시다던 아버지께 '아버지 물음 답해 드리느라 배고파요.'"라는 대조적인 표현은 시인의 역할 변화와 아버지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나타낸다. 이제는 아버지가 시인의 대답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주제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아버지의 가르침이 시인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되새기는 것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지혜와 사랑을 통해 성장했고, 그 가르침이 지금까지도 삶의 등대로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시인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배우고, 이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 비유적 표현, 그리고 일상적인 언어 사용을 통해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각 연마다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조명하며 시인의 감정을 점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자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의 감정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면 독자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랑의 감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시인의 감정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채선엽 시인의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 그리고 아버지의 가르침이 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의 섬세한 표현과 깊은 감정이 잘 드러나 있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아버지의 가르침과 사랑이 시인의 인생을 어떻게 빛내 주었는지, 그리고 그 가르침이 지금도 시인의 삶을 인도하고 있음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삶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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