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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떼기시장

청람 김왕식







도떼기시장의 유래와 변천사





도떼기시장, 돛대기시장, 돗떼기시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시장은 그 유래와 의미에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표준어로 인정되는 '도떼기시장'과 조금은 엉뚱하게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도깨비시장'에 대해 알아본다.

'도떼기시장'이라는 이름은 원래 보따리를 풀 새도 없이 숨 가쁘게 거래가 이루어지던 시장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는 정상적인 시장과는 달리 일정한 곳에서 재고품, 중고품, 고물 등의 방매나 비밀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끌벅적한 시장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도떼기'라는 말의 어원은 다양한 설이 있다. 한 설은 '도'가 한자 '都'에서 유래해 '모두'라는 뜻을 지니며, '떼다'의 명사형 '떼기'가 합쳐져 '도떼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설은 장사를 하려고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들인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일본어 경매에서 낙찰을 받았을 때 쓰는 '돗따'라는 표현에서 파생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도떼기시장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곳은 부산의 국제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시장은 1945년 광복 이후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948년 자유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부산중구청은 이 시장을 '돗대기시장' 또는 '돗떼기시장'이라고도 부르며, 그 이유는 시장의 규모가 크고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시장에서는 물건을 한꺼번에 싸게 사들이는 '도거리' 방식의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든 도떼기시장은 자유시장이 한국전쟁 이후 국제시장으로 자리 잡기 전의 과도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도떼기시장의 유래가 될 법한 기록이 <거제시지>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흥남철수작전으로 인해 북한 피난민들이 거제도에 정착하면서 포로수용소 주변에 무질서하게 난전이 형성되었다. 이를 보다 질서 있게 만들기 위해 돗드 준장이 일정한 구역을 정해주었고, 이 거리를 '돗드시장'이라고 불렀다. 이 '돗드시장'이 자연스럽게 '도떼기시장'으로 변형되었다는 설이다. 도떼기시장은 처음에는 포로수용소 주변에 있었으나, 장승포항구가 있는 신부시장으로 옮겨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피난민들은 거제를 떠나 주로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고, 도떼기시장은 부산 자유시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북적거리는 모습이 거제의 돗드시장을 연상시키며 '도떼기시장'으로 불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록과 이야기는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도떼기시장의 이름이 돗드 준장이 정해준 거리시장이라는 말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도떼기시장은 그 자체로 한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이다.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되던 이 시장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유래와 변천사를 통해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도떼기시장은 단순한 시장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 있다.

따라서, 도떼기시장은 그 자체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여겨져야 하며, 그 역사와 의미를 후대에 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시장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경제 활동 이상의,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얽힌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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