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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05. 2024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 '자화상'을 평론가 청람 평하다

미당 서정주와 청람 김왕식








                  자화상





                       시인 미당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술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癡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찬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도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정주 시인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그의 시 '자화상'은 자전적 서사와 더불어 시대적 아픔을 담고 있다. 이 시는 개인의 내면적 고백과 더불어 사회적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이 첫 구절은 시인의 부재감을 표현하고 있다. '애비'의 부재는 단순히 물리적 부재를 넘어선 심리적 결핍을 나타낸다. 이는 시인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암시한다. 이 구절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은 시인의 내면적 상처를 드러낸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이 구절은 할머니의 모습과 대추꽃을 병렬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자연과 인물을 연결 짓는다. 할머니의 모습은 시골 풍경과 잘 어울리며, 대추꽃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상징으로 읽힌다. 시인은 이를 통해 삶의 지속성과 자연의 순환을 표현하고 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여기서는 당대의 가난과 궁핍을 드러낸다.

달을 두고 풋살구를 먹고 싶어 하는 부분은, 임신하여 입덧을 하면서도 그 흔한

풋살구 하나조차 먹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을  상징한다. 이는 시인의 어린 시절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흙으로 바람벽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이 부분은 시인의 출생과 환경을 언급한다. '흙으로 바람벽'은 당시의 가난한 생활환경을,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어머니의 모습은 고단한 삶을 상징한다. '갑오년'은 시인의 출생 연도로, 이를 통해 시인의 자아 형성과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술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외할아버지의 모습과 그와 닮았다는 언급은 시인의 외모적 유전뿐만 아니라 내면적 특성까지 물려받았음을 나타낸다. 이는 시인의 정체성과 가족사 사이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며, 시인의 자아를 보다 구체화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여기서는 시인의 인생 여정을 바람에 비유하고 있다. 바람은 흔들림과 불확실성을 상징하며, 이는 시인이 경험한 세상의 고난과 불안정을 나타낸다. '부끄럽기만 하더라'는 표현은 시인의 자아성찰과 세상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이 구절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드러난다. 타인들은 시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평가하지만, 시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는 시인의 자존감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도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여기서 시인은 자신의 시에 담긴 고통과 희생을 언급하고 있다. 시의 '이슬'과 '피'는 순수성과 고통을 동시에 상징하며, 이는 시인이 창작을 통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아픔을 드러낸다.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마지막 구절은 시인의 삶의 여정을 병든 수캐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시인이 겪어온 고난과 피로를 상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그의 강한 생명력을 표현한다.

서정주의 시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한 문체 속에 깊은 상징성과 은유를 담고 있다. 특히 '바람', '호롱불', '이슬', '피' 등의 자연적 이미지들은 시인의 내면적 갈등과 정체성을 부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서정주는 인물과 자연을 병렬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서정주는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성장 과정과 내면적 고백을 담아냈다. 부재와 결핍, 고통과 희생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시인의 자화상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는 독자에게 삶의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강인함과 존엄성을 일깨워준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시인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다.

다만 일부 구절에서 조금 더 명확한 설명이나 연결고리가 있었더라면 독자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하는 외할아버지'의 표현은 매우 애매하다.

할아버지가 어부라서 바다에 나간 것인지,

아니면,

민족 운동가로서 독립운동을 하러 간 것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아 독자들에게 혼동을 야기케 한다.

특히 '갑오년이라든가'에서는 애매성이 더욱 심하다. 미당 시인이 친일파로 치부되는 부분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친일파라 칭하는 김성수의 마름이었기에, 친일적 행위를 씻을 수 없었다.

서정주는 그런 아버지가 아닌 외할버지를 닮았다 했다.

바로 이 대목이다.

갑오년은 1894년으로서 갑오개혁도 있었지만,

전봉준의 동학 민족 농민 운동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하여 외할어버지는 민족 운동에 가담했을 수 있다는 여지를 준다.

친일행위를 한 아버지를 닮지 않고, 민족 운동을 한 외할어버지를 닮았다는 것은, 미당 자신은 친일파의 누명을 벗어나 민족주의자인 할아버지의 후예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애매성을 두고 미당 자신이 의도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학자들은 다음을 제시한다.

미당은 광복 후 친일파로 몰리자 놀랄 만한 발언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나는 일본이 이렇게 빨리 패망할 줄을 몰랐다."

미당이 바보가 아닐진대

어찌 이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병든 수캐'라는 비유 역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튼
서정주의 '자화상'은 시인의 내면적 고백과 시대적 현실을 동시에 담아낸 걸작이다. 이 시를 통해 독자들은 시인의 삶과 생각을 깊이 이해하게 되며, 그의 시 세계에 대한 존경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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