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친구 기형도가 그랬던 것처럼, 숙제를 천천히 했다
애비없는 자슥이니까 그렀지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l 26. 2023
애비 없는 자슥이니까 그렇지!
누구나 장난칠 수 있다.
아버지 일찍 돌아가신 아이
홀어미 슬하에서 자랐다
엄만 새벽길 머릿짐이고
장터 십리길이다
목 길게 뽑고 아무리 동구밖 바라봐도
엄만 뵈지 않는다
뒤척인다
심심하다
파고다극장에서
영화 보던
기형도처럼
아랫목에 배 깔고 밀린 숙제 한다
그것도 빨리하면 심심할까 천천히 한다
그래도
또
심심하다
애꿎은 돌멩이 발로 찼다
하필 김씨네 장독이다
김 씨 아저씨 눈 부라리며
외마디 쏘아댄다
"애비 없이 자랐으니 쯧쯧"
ㅡ
어린 시절,
그날의 기억은
저편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불투명하다.
새들도 높아 오르기 버겁다는
하늘아래 첫 동네
왕식이는 그렇게 자랐다.
아버지는
그가 아장아장 발걸음 뗄 때쯤
세상을 뜨셨다.
그의 세상은
엄마의 새벽길 머릿짐과
장터 십리길을
왔다 갔다 하는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거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심심했다.
그 심심함은
단순히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삶이 정해져 있었다.
그를
둘러싼 세상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는 것에 대한
고독과 쓸쓸함이었다.
그는
목을 길게 뽑아 어머니를 기다렸다.
얼마를 기다려도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결여는
그의 심심함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그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숙제를 했다.
그의 친구
기형도가 그랬던 것처럼
윗목에 배 깔고
천천히,
마치
숙제를 다 끝내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은 두려움으로.
그의 심심함은
그것만으로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찼다.
그 발길이 닿은 곳은
김씨네 장독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심심함의 무게로 인해
다른 무엇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때
김 씨 아저씨가
눈을 부릅뜨며
한 마디를 쏘아댔다.
"애비 없이 자랐으니 쯧쯧"
그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의 심심함,
고독,
쓸쓸함은
그의 아버지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결과였다.
그런 그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도 함께 느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심심함을
더 이상 단순한 감정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삶의 일부였고,
그를 자신으로 만든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그 심심함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어떤 존재든
그의 삶과 그림자를 던지게 하는
불완전한 사랑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게 되었다.
심심함이라는
작은 감정을 통해
그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졌다.
그것은
아픔과 슬픔,
이해와 사랑으로 이어져
그의 삶의 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성장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ㅡ
초등학교 입학하면
담임 선생님은
꼭
우리에게
눈을 감으란다.
눈을 뜨면
절대로 안 된다며
몇 번이나 강조한다.
묻는다
"아버지 없는 사람 손들어!"
나는 눈을
꽉 감은 채
슬며시
손을 든다
"김왕식 손 내려!
됐어, 이제 모두 눈 떠!"
그때부터
나는
애비없는 자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