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바다이다, 거꾸로 쏟아질까 두려웠다!

나의 초등학교 그림일기




제목 ; 가을 하늘



가을 하늘은 바다이다
바다가 하늘에 거꾸로 걸렸다
무섭다


내 머리에 쏟아질 것 같다
어디에 숨지
아무리 찾아도 숨을 곳이 없다
모르겠다


할 수 없이
양동이를 뒤집어썼다


이젠 됐다!


그런데
물은 안 쏟아지고
떵그렁!


엄마의 부지깽이 소리만 요란타

1968년 8월 23일

김왕식








여전히
저 무서운 듯
아름다운 가을 하늘은
마음에 박혀 있다.

나의
초등학교 때
그림 일기장에 담겨있던
그 하늘은

이 세상 어떤 색깔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청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시절,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이었다.

가을 하늘은 바다였다.
하늘이
역동적인 파랑의 바다로 변해,

내 머리 위에 엎드려질 것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무섭기까지 했다.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해서
어디에 숨을 곳이 없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할 수 없이
그 높은 하늘과 마주하기 위해
양동이를 뒤집어썼다.

떵그렁,

그때의 나는
그런 아름다운 가을 하늘 아래서 엄마의 부지깽이
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웃었다.

그 웃음은
오늘날의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물론,
그 가을 하늘 아래서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5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잊었다.

그때의
내가 그려놓은 그림 일기장의 가을 하늘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은
서재 구석에 묻힌
빛바랜 공책에서 발견한
나의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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