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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2. 2024

외국인임에도 한국인보다 더 !

김장환 목사 아내 트루디 여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장환 목사의 아내, 트루디여사

     심긴 그곳에 꽃 피게 하소서





              





1959년 12월 12일 밤 8시,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화물선은 17일 만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 화물선에는 스물한 살의 미국인 여성 트루디가 타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항구를 출발할 때 건너편 산에 있던 고급 주택들에서 반짝이던 불빛은 무척 아름다웠다. 한국에 처음 온 트루디의 눈에는 부산의 밤 풍경도 그랬다. 화물선에서 내다본 산에는 집집마다 쏟아내는 불빛들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트루디는 속으로 생각했다. "부산은 샌프란시스코만큼 아름다운 도시구나." 이튿날 날이 밝자 트루디는 갑판으로 나갔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광경은 딴판이었다. 지난밤에 보았던 불빛들은 황폐한 산동네 판자촌에서 삐져나온 지독한 가난의 풍경이었다. 하긴 한국전쟁이 멈춘 지 불과 6년 후였으니 오죽했을까. 한국은 전 국토가 폐허가 된 상태였다. 그 땅에 첫발을 내디디고, 이후 60년 넘는 세월을 트루디는 한국에서 선교사로 살았다. 그녀의 남편은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였다. 물론 당시에는 젊고 가난한 전도사였다.


김장환 목사는 한국전쟁 와중에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했다. 온갖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을 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미군 병사 칼 파워스는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구하겠다'라고 다짐한 뒤 하우스 보이로 일하던 똘똘한 아이에게 미국으로 가는 배표와 함께 유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칼 파워스 상사는 부자가 아니었다. 탄광촌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이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김장환을 후원했다. 어린 김장환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밥 존스 고등학교와 신학대, 신학대학원을 모두 마칠 때까지 말이다.


그런 김장환을 만난 트루디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남편을 따라서 머나먼 이국땅 한국으로 온 것이었다. 1959년, 미국인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한국인의 눈에는 큰 구경거리였던 시대에 말이다. 그러니 트루디 여사가 한국 땅에서 헤쳐온 60년 넘는 세월은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그녀는 올해 86세이다. 트루디 여사는 김장환 목사와 결혼하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 막 도착한 뒤 시댁에서 처음으로 잔치국수를 먹다가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작은 생선 한 마리가 육수 위를 헤엄치고 다녔다. 그녀는 그런 음식을 난생처음 보았다. 알고 보니 육수를 내기 위한 마른 멸치였다. 기겁한 그녀는 결국 국수를 입도 대지도 못했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런데도 그녀는 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을까.


트루디 여사는 이렇게 답했다. "심긴 그곳에 꽃 피게 하소서. 이게 저의 기도이자 믿음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올린 예수의 기도가 떠오른다. 우리는 대부분 따진다. 내가 심어지고 싶은 곳이 있고, 꽃 피고 싶은 곳이 있다. 그곳에 가길 열망하고, 그곳이 아니라면 강하게 거부한다. 심기고 싶은 곳에서 꽃 피고 싶어 하지, 심긴 곳에서 꽃 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겟세마네에서 십자가 처형을 목전에 두고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했다. "가능하면 이 잔이 저를 비껴가게 하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이 기도에는 ‘자기 십자가’가 있다.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예수의 가슴이 있다. 트루디 여사의 기도도 그랬다. 자신이 심기는 곳, 전쟁이 막 끝난 가난한 한국 땅을 트루디 여사는 자기 십자가처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꽃을 피웠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예수의 기도처럼 말이다.


김장환 목사가 목회를 할 때였다. 교회에는 늘 주방과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하루 한 번씩, 빠짐없이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교인들은 오다가다 칭찬을 했다. "아니, 어디서 저렇게 부지런한 외국인 청소부를 구했을까?" 알고 보니 그 청소부는 다름 아닌 김장환 목사의 사모 트루디 여사였다.


1978년에는 교회 부설로 중앙기독유치원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장애 아동이 다닐 유치원이 거의 없었다. "안타까웠습니다. 장애아동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함께 생활하다 보면 장애가 없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많이 배우게 마련입니다. 남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마음을 익히게 됩니다." 실제 트루디 여사는 유치원에서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통합 교육을 실시했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트루디 여사는 은퇴할 때까지, 40년간 자신의 월급 통장을 유치원 직원에게 맡겼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월급을 쓴 적이 없었다. 유치원에는 늘 돈이 부족했고, 자신의 몫만 챙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휴대폰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다. 있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게 이유였다. 트루디 여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게 된다. 아, 이분은 목회자의 사모이기 이전에 한국땅에 온 선교사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쓴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제목이 『한국에 왜 시집왔나』이다. 두껍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진실한 마음의 파도가 내내 밀려오는 책이다.


2006년에 트루디 여사는 암 진단을 받았다. 다발성 골수종 3기였다. 척추 일부를 절단해야 했다. 수술 후에는 걷지도 못했다. 아기의 걸음마처럼, 처음부터 모든 걸 익혀야 했다. 계단을 오르는 법부터 자동차에 타는 법까지 말이다. 책에는 이 와중에 트루디 여사가 올린 기도와 내면에서 들은 성령의 소리가 기록돼 있다. "만약 너에게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나와 이렇게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었겠느냐. 이렇게 작은 일에도 감사할 마음이 들었겠느냐. 네가 지금보다 온유할 수 있었겠느냐.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 시련을 주었다. 네가 아파할 때 나 역시 십자가를 지며 걸었고, 네가 고통 속에서 울 때 나도 함께 눈물 흘렸다."


이 대목에서도 트루디 여사의 꽃을 볼 수 있다. 심기고 싶은 곳이 아니라, 심긴 곳에서 꽃을 피우는 풍경을 보았다. 그 풍경 아래로 예수의 기도가 흘렀다.


이런 트루디 여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녀의 삶과 믿음, 그리고 헌신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루디 여사는 심긴 곳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웠고, 그 꽃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녀의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준다. "심긴 그곳에 꽃 피게 하소서." 이 기도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이었다. 트루디 여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헌신과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녀의 삶은 단순한 사역을 넘어서, 하나의 사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심기든 그곳에서 꽃을 피우겠다는 결심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했다.


트루디 여사는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월급을 자신을 위해 쓰기보다는 유치원을 운영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그녀가 진정한 의미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단순히 남편의 지원자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트루디 여사는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가정에서는 헌신적인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믿음과 사랑으로 이겨냈다. 특히 암 투병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용기와 인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더욱 깊은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트루디 여사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헌신인지, 그리고 신앙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녀는 단순히 말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신앙을 실천했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을 준다.


트루디 여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녀의 이러한 헌신적인 삶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트루디 여사의 삶은 우리가 어디에 심기든 그곳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녀의 기도, "심긴 그곳에 꽃 피게 하소서"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헌신과 신앙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다.


트루디 여사는 단순히 한 사람의 선교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그녀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녀의 기도처럼, 우리 모두가 어디에 심기든 그곳에서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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