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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un 12. 2024

노천명의 수필 '여름밤'을 청람 평하다

사슴의 시인 노천명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여름밤



                                  노천명




앞벌 논가에서 개구리들이 소낙비 소리처럼 울어대고 삼밭에서 오이 냄새가 풍겨 오는 저녁 마당 한 귀퉁이에 범상넝쿨, 엉겅퀴, 다북쑥, 이런 것들이 생짜로 들어가 한데 섞여 타는 냄새란 제법 독기가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 다만 모깃불로만 쓰이는 이외의 값진 여름밤의 운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달 아래 호박꽃이 화안한 저녁이면 군색스럽지 않아도 좋은 넓은 마당에는 이 모깃불이 피워지고 그 옆에는 멍석이 깔리고 여기선 여름살이 다림질이 한창 벌어지는 것이다. 멍석 자리에 이렇게 앉아 보면 시누이와 올케도 정다울 수 있고, 킁내기에게 다림질을 붙잡히며, 지긋한 나이를 한 어머니는 별처럼 머언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함지박에는 자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오란 강냉이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나오는 법이겠다.

쑥댓불의 알싸한 내를 싫찮게 맡으며 불부채로 종아리에 덤비는 모기를 날리면서 강냉이를 뜯어먹고 누웠으면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핀다.

이런 저녁, 멍석으로 나오는 별식은 강냉이뿐이 아니다. 연자간에서 가주 빻아 온 햇밀에다 굵직굵직하고 얼숭덜숭한 상낭콩을 두고 한 밀범벅이 또 있겠다. 그 구수한 맛은 이런 대처의 식당 음식쯤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온 집안에 매캐한 연기가 골고루 퍼질 때쯤 되면 쑥 냄새는 한층 짙어져서 가정으로 들어간다. 영악스럽던 모기들도 아리숭 아리숭하는가 하면 수풀 기슭으로 반딧불을 쫓아다니던 아이들도 하나 둘 잠자리로들 들어가고, 마을의 여름방학은 깊어지고 아낙네들은 멍석 위에 누워서 생초 모기장도 불면증도 들어보지 못한 채 꿀 같은 단잠이 퍼붓는다.

쑥을 더 집어넣는 사람도 없어 모깃불의 연기도 차츰 가늘어지고 보면, 여기는 바다 밑처럼 고요해진다.

굴 속에서 베를 짜던 마귀할미라도 나와서 다닐 성부른 이런 밤엔, 헛간 지붕 위에 핀 박꽃의 하이얀 빛이 나는 무서워진다.

한잠을 자고 난 애기는 아닌 밤중 뒷산 포곡새 울음소리에 선뜻해서 엄마 가슴을 파고들고, 삽살개란 놈은 괜히 짖어대면 마침내 온 동리 개들이 달을 보고 싱겁게 짖어대겠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생각건대

노천명은  분명 시인일진대

수필 또한 피천득의 버금이다.

대단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서정적 수필이다.


감히

노천명은

'서정적 수필의 개척자다'라고

평하고 싶다.






노천명의 '여름밤'은
고즈넉한 여름 저녁의 정취를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수필은 농촌에서의 평화로운 여름밤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정겨움을 그려냈다.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노천명은 섬세한 묘사와 생생한 감각을 통해 독자들이 그 장면을 눈앞에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수필의 시작은 논가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와 삼밭에서 풍기는 오이 냄새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자연의 소리와 냄새는 독자들에게 농촌의 여름밤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한다.
특히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소낙비 소리"에 비유했다. 이 표현은 그 소리가 얼마나 시원하고 생동감 있게 들리는지를 잘 전달해 준다. 이런 소리와 냄새는 농촌의 여름밤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룬다. 이는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니라 독자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저녁 마당의 풍경이 그려진다. 마당 한 귀퉁이에 모깃불이 피워진다. 그 옆에는 멍석이 깔리며 여름살이 다림질이 한창 벌어진다. 이 장면은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여름밤을 즐기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다림질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정겨운 가족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 어머니의 지긋한 나이에서 나오는 별 이야기 등은 가족 간의 따뜻한 유대감을 강조한다.

또한, 강냉이와 밀범벅 같은 소박한 음식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농촌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노천명은 강냉이의 "먹음직스럽게 담겨 나오는 법"을 묘사하며, 이러한 소박한 음식들이 여름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특히 밀범벅의 구수한 맛은 대처의 식당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농촌 음식의 특별함과 그 속에 담긴 정서를 잘 전달해 준다.

수필의 후반부에서는 여름밤의 정취가 깊어지는 모습을 그려낸다. 쑥댓불의 냄새가 한층 짙어진다. 아이들은 반딧불을 쫓다가 잠자리에 든다. 아낙네들은 멍석 위에서 꿀 같은 단잠에 빠진다. 이러한 장면은 여름밤의 고요함과 평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모깃불의 연기가 차츰 가늘어지며 마을이 고요해지는 장면을 마치 바다 밑처럼 고요해진다고 표현한 부분은,
그 고요함을 극대화한 압권이다.

마지막으로, 한밤중에 들리는 뒷산 포곡새 울음소리와 삽살개의 짖음은 여름밤의 고요함 속에 잠깐씩 나타나는 소리들이다. 이는 오히려 그 고요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한, "굴 속에서 베를 짜던 마귀할미라도 나와서 다닐 성부른 이런 밤"이라는 표현은 여름밤의 신비롭고 조금은 두려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여름밤의 다양한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며, 그들이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반면, 읽은 이에 따라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시종 문장의 호흡이 길다.
첫 문장부터 100여 글자가 넘게 시작된다.
시를 쓰는 사람들에겐 만연체인 이  글이 숨찰 수 있다.
허나 김진섭의 수필 '매화찬'을 읽은 사람이라면 참을 만하다.

노천명의 "여름밤"은 이러한 섬세한 묘사와 생생한 감각을 통해 독자들에게 농촌의 여름밤을 체험하게 한다. 이 수필은 단순한 농촌 생활의 묘사를 넘어서,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따뜻한 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전달하고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읽는 즐거움을 넘어서, 그들이 그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한다. 노천명의 글은 단순히 과거의 농촌 생활을 회상하지만은 않는다.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수필은 독자들에게 여름밤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게 하며,
그 속에서 인간의 따뜻한 정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발견하게 하는 수작秀作임에 틀림없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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