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왕식 '눈금과 시간의 본질'을 사유한다

문학평론가 김왕식







눈금과 시간의 본질

ㅡ존재의 정확성을 향한 사유




일상 속에서
길이를 측정할 때
자를 사용하고,
시간을 측정할 때
시계를 사용한다.

이러한 도구들은
우리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해 주지만,
여기에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자의 눈금이 정확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사용할까?

시계의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또 다른 시계가 필요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철학적인 사유를 요구한다.

이 질문을 통해
존재와 인식,
그리고
정확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자를 사용해 길이를 측정한다. 하지만 자의 눈금이 정말로 정확한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표준 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표준 자 자체는 무엇에 의해 측정되는가? 이 질문은 정확성의 상대성을 드러낸다. 절대적인 정확성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모든 측정은 상대적인 것인가?

이러한 사유는 우리의 인식과 측정 도구에 대한 신뢰의 한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도구들이 정확하다고 믿지만, 그 도구들의 정확성 역시 다른 도구들에 의해 확인된다. 이는 마치 끝없는 거울의 반사처럼, 절대적인 기준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시계는 우리의 시간 인식을 도와준다. 그러나 시계가 정확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또 다른 시계가 필요한가? 여기서 우리는 시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직면한다. 시간은 객관적인 실체인가, 아니면 우리의 인식 속에서 존재하는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운동의 척도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인간 인식의 형식으로 보았다. 이 두 관점은 시간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만약 시간이 주관적인 것이라면, 시계의 정확성은 우리의 인식에 달려있다. 따라서 시계의 정확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속에서 상대적인 것이다.

길이와 시간의 측정을 통해 우리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존재는 절대적인 것인가, 아니면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존재의 절대성을 주장하지만, 현대의 철학적 사유는 존재의 상대성을 강조한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시간 속에서 이해했다. 그는 인간의 존재를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우리의 존재가 시간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계의 정확성은 우리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자의 눈금과 시계의 정확성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우리는 절대적인 정확성에 도달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성을 추구한다. 이는 인간의 무한한 탐구심을 보여준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의 존재가 인식에 의해 확인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우리는 무한한 존재를 인식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존재를 탐구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역설이며, 동시에 우리의 존재를 풍부하게 만든다.

자의 눈금과 시계의 정확성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측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존재와 인식, 그리고 정확성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우리는 절대적인 정확성에 도달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성을 추구한다. 이는 인간의 무한한 탐구심을 보여주며, 우리의 존재를 풍부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인식,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측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와 인식을 풍부하게 만드는 철학적 탐구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정확성에 도달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성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더욱 풍부해진다.









인식과 존재,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우리는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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