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

청람 김왕식







내 탓





시인 주광일





내 한평생
겪은 고통

모두 모두
내 탓이었네

사람들 관심 못 받고
외톨이로 산 까닭도

모두 모두가
내 부족 탓이었네

그래도 세월은
나를 버리지 않았네

여든 넘은 내가
아직 걷고 있다네

세월을 다스리는
주님 덕분일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은 그의 삶을 통해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이 시에서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의 경험을 담담히 그려내며, 인생의 깊이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아픔을 외부 요인에 돌리지 않고, 자기 내면으로 돌려 바라보는 겸허함과 성찰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기비판이 아닌, 성숙한 자아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자기 고백의 형태로 나타난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그가 살아온 인생의 궤적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삶의 고통과 희망, 인내와 신앙을 통합하는 그의 철학적 사유가 빛을 발한다.

시의 첫 행은 "내 한평생 겪은 고통"으로 시작된다. 이는 시인의 생애가 단순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그의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시의 주요 주제로 다가온다. '한평생'이라는 표현은 긴 세월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그 시간 동안 겪은 고통이 그의 존재를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시사한다. 이 구절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서, 독자에게도 삶의 고통을 회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모두 모두 내 탓이었네"는 시인이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모습이다. 흔히 고통은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광일 시인은 이를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자책이 아니라, 성숙한 자기 인식이다. 그는 고통의 원인을 외부로부터 찾는 대신, 내면에서 답을 구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철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구절로,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고통조차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그의 인식은 깊은 성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람들 관심 못 받고 외톨이로 산 까닭도"라는 행에서는 시인의 고독한 삶이 드러난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로이 살아온 인생을 시인은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관심'과 '외톨이'라는 단어는 시인의 외로움과 사회적 소외감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러한 고독을 단순한 사회적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림으로써 다시 한 번 내적 성찰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모두 모두가 내 부족 탓이었네"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절로, 시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자신의 부족함에서 기인한 것이라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자기비판을 넘어선,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 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인의 포용적 태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태도는 시인의 겸손함을 나타내며, 고통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성숙한 시각을 드러낸다.

"그래도 세월은 나를 버리지 않았네"는 시인의 긍정적 시각을 드러내는 구절이다. 모든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세월은 그를 버리지 않았음을 언급하며, 이는 인생의 지속성에 대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시인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이는 인생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시인의 긍정적 철학을 보여준다.

"여든 넘은 내가 아직 걷고 있다네"라는 구절에서는 시인의 현재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걷고 있음을 언급하며,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강인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 구절은 시인이 자신의 나이와 관계없이 여전히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하며, 그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미지로 작용한다.

"세월을 다스리는 주님 덕분일세"라는 마지막 행은 시인의 신앙적 배경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 준 힘이 신에게 있음을 고백하며, 신앙을 통해 삶의 고통을 이겨낸 과정을 암시한다. 이는 시인이 단순히 자기 성찰을 넘어, 신앙을 통해 고통을 승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며, 그의 가치관과 철학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고통을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도,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신앙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시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세월이 주는 은혜와 신의 존재를 통해 여전히 삶을 걸어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시인은 단순히 고통에 머물지 않고, 이를 초월하여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삶의 진정한 본질을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시인이 표현하는 고통과 희망, 고독과 신앙은 단순히 개인적인 체험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시인은 그의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며, 이를 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주광일 시인의 시는 깊은 철학적 사유와 감성적 울림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으며, 독자에게도 삶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독자가
주광일 시인에게
보내온
글이다.




주광일 시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이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한 독자입니다. 사실 저는 시를 자주 접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문학을 사랑하고 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지만, 저에게 시는 그저 책 속의 글자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시인님의 작품을 읽게 되면서, 시가 어떻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 솔직함과 진솔함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나 감정을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시인님의 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고백하듯, 한없이 솔직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독자인 저로 하여금 시를 단순한 글이 아니라 시인님의 삶의 한 단면을 엿보는 창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인님께서는 "내 한평생 겪은 고통 모두 모두 내 탓이었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고통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이런 식의 핑계를 대기 쉽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세상과 사람을 탓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인님은 달랐습니다. 시인님은 그 모든 고통을 자신의 탓이라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도 후회나 자책이 아니라, 성숙한 자기 성찰로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저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삶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가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삶의 외로움과 고통을 겪었음을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 속에서 저는 시인님께서 그러한 고통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는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담은 철학적 사유였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나를 버리지 않았네"라는 구절도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지나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가끔 시간이 지나면서도 우리의 상처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좌절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인님께서는 그러한 세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세월이 주는 은혜를 받아들이고,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시인님의 시에서 저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걸어가는 힘을 배웠습니다.

여든을 넘으신 시인님께서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는 말씀은 단순한 사실적 서술을 넘어,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을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고통을 많이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삶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시인님은 이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더라도, 계속해서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이 메시지는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월을 다스리는 주님 덕분일세"라는 구절에서 저는 시인님의 신앙적 배경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인님께서는 자신의 삶의 여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않고, 주님께 맡기셨습니다. 이는 자신을 넘어서 더 큰 존재에 대한 신뢰와 의지, 겸손한 마음을 드러내는 구절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을 넘어서 더 큰 존재에 의지하는 삶의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시인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그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그분께서 이끄는 대로 삶을 걸어가셨습니다. 이 점에서 시인님의 신앙과 철학이 얼마나 깊고 강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단순히 개인의 고백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의 고통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시를 읽는 많은 독자들이 시인님의 메시지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는 시인님의 시를 읽고, 그 감동을 글로 표현하려 했지만, 이 짧은 글로는 시인님의 깊이를 다 표현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시인님께서 살아오신 인생의 궤적과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은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기에 너무나 깊고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님의 시가 제게 남긴 여운을 조금이나마 전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시인님의 시는 저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고통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가는 방법을 시인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시인님의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라며, 시인님께서 여전히 건강하게 삶을 걸어가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인님의 글에 감동받은 독자 드림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토마스 쿤(Thoma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