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늘 냄새

박진우 작가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하늘 냄새



수필가 박진우




"침묵은 언제나 나 자신과의 대화이자 소통입니다."

이 대화는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보다 더 진솔하고 따뜻합니다. 또한 침묵 속에서 나는 세상과 일대 일로 마주하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말이란 사회적 약속이라고들 하지요. 외로움과 고독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의미는 다릅니다. 외로움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만, 고독은 침묵 속에서 나누는 소통입니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나 자신과 고독이 마주하는 그 침묵의 바다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 신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 침묵의 바닷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 순수했던 고독의 세계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다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어머니와 함께 공주에서 서울로 이사 와 마포 이대입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세상은 전쟁 직후라 시끄럽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어머니는 포목 장사를 하러 나가셨고, 나는 혼자 집에 남았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과자를 사 먹으라고 하셨지만, 나는 콩나물을 사고, 다음날은 두부를 사서 찬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어머니가 밤늦게야 돌아오셨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그렇게 했습니다. 쪽마루에서 혼자 잠들었다가 마당으로 떨어져 마당에서 낮잠을 자는 일이 잦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머니는 지방까지 단골이 생겨 몇 날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이태원에 있는 작은 이모네 집으로 가서, 여섯 식구가 좁은 방에서 먹는 콩나물죽을 먹곤 했습니다. 지금처럼 버스나 전철이 없던 시절, 종로에서 마포까지 가는 전차만 있었습니다. 나는 신촌에서 이태원까지 철길을 따라 매일 걸어갔습니다.

철로를 따라 걸어가던 어느 날, 사람들은 기차가 다니는 다리를 두 다리로 조심스레 건너곤 했습니다. 마치 곡예사처럼 목숨을 걸고 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다 해도 아무도 모를 시대였지요.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철로에 귀를 대고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나는 철로에 귀를 대었지만, 기차가 오는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한참 망설이다 결국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쯤 건너갔을 때 저 멀리서 "뻑!" 하는 기적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뛰어내릴까 고민했지만, 낭떠러지였고 나는 헤엄을 칠 줄도 몰랐습니다. 결국 달리기로 결심하고 온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땅에 도착한 순간 굴러서 넘어졌고, 바로 그때 태풍 같은 기차가 휙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은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나를 덮치거나, 슬퍼서 울거나 하는 감정이 내 안에는 없었기에, 나는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킬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때 내 어린 영혼이 하늘처럼 맑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법정 스님은 '하늘 냄새'라는 시에서 영혼의 향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킨 침묵의 삶은 하늘처럼 맑았고, 그 맑음은 어린 영혼의 향기가 되어 기적을 낳았습니다. 나는 오늘에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독은 때로 낭만의 한 나부랭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이기에 위로와 사랑이 필요하지만, 고독은 침묵 속에서 소통하기에 더 이상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외로움은 타인의 고통을 품지 못하지만, 고독은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습니다. 외로움이 익어갈 때는 육신이 처절하게 흐느끼지만, 고독이 익어갈 때는 영혼이 벅차 흐느낍니다.

나는 지금도 고독의 예찬론자입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진우 작가의 수필 "하늘냄새"는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자신과의 진정한 소통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글은 작가가 어린 시절 겪었던 외로움과 그 경험이 결국 고독으로 승화되면서 형성된 내면의 철학을 따뜻하고 진솔하게 풀어낸다.

작가는 외로움과 고독을 단순히 동일시하지 않고, 이 둘을 뚜렷이 구분한다. 외로움이 사방이 막힌 벽 속에 갇힌 상태라면, 고독은 자신과의 침묵 속에서 나누는 소통이라고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관점으로, 외로움이 타인에게 위로와 사랑을 구하는 상태라면, 고독은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타인의 고통을 품을 수 있는 상태로 확장된다. 이런 철학적 구도는 작가의 깊은 사유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외로움과 고독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 든다. 어린 시절의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콩나물을 사고 두부를 사며, 그저 혼자가 되어 집안을 돌보던 기억을 떠올린다. 당시의 고립된 삶은 외로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지만, 작가는 이를 침묵 속에서 자신과 대면하는 고독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고독 속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그 경험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기적을 일으켰음을 뒤늦게나마 인정한다.

수필 속에서 작가는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의 영혼이 맑고 고요할 때 비로소 '하늘 냄새'를 느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작가가 고독을 단순한 감정적 상태로 보지 않고, 영혼의 순수함을 발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고독은 외로움과 달리, 스스로를 발견하고 내면의 평온을 찾는 과정에서 더 깊은 성숙을 이루게 하는 소중한 경험으로 여겨진다.

작가의 삶의 철학은 결국 고독의 예찬에 이른다. 고독은 작가에게 있어 단순한 낭만적 상상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품고 자신을 초월하는 길이다. 외로움이 개인적인 고통에 머무른다면, 고독은 그 고통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성숙한 상태로 발전한다. 이는 작가가 평생을 통해 이룬 중요한 깨달음이며, 이를 통해 고독이 인간 존재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았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박진우 작가의 수필 "하늘냄새"는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며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의 철학은 삶의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긴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니체는 미쳤고, 펄벅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