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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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속 속삭임
W 시인
처마 밑에 흔들리는 쪽진 제비꽃을 보며
스쳐간 바람이 멈췄어.
혹여나 궁금해진다면,
그 꽃잎 뒤에 나도 숨어서
숨죽이고 있었단 걸 기억해 줘.
네가 뒤돌아보는데
낯선 속삭임이 스쳤다면,
어디선가 네 이름을 부르는 소리라면,
그건 내가 그림자 속에서
널 부르고 있는 거라고 믿어줘.
깊은 밤,
가로등 불빛만이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을 때,
너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면,
그건 내가 너에게 가까워졌다는
아주 작은 신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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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W시인은 평소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섬세한 언어로 담아내며, 깊은 감성적 울림을 자아내는 시를 쓰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이 조화를 이루며, 보이지 않는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감정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특히, 작은 순간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감정의 변화를 주의 깊게 포착해 그 순간을 독특한 시적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능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그림자 속에서 일어나는 숨겨진 감정의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 감정의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다.
"처마 밑에 흔들리는 쪽진 제비꽃을 보며"
첫 행은 일상의 작은 풍경에서 시작된다. ‘처마 밑’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고요하고 은밀한 장소로, ‘제비꽃’은 작고 연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시인은 흔들리는 제비꽃을 관찰하며 작은 변화에도 주목한다. 제비꽃이 흔들리는 모습은 그저 바람의 영향일 수 있지만, 동시에 내면의 불안정한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작은 이미지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쳐간 바람이 멈췄어."
바람은 일시적이며, 언제나 지나가지만 이 시에서는 그것이 멈췄다는 점이 특별하다. 바람의 멈춤은 일종의 정적, 또는 순간의 중단을 의미하며, 이는 감정의 흐름이 잠시 멈춰 섰음을 상징한다. 바람은 종종 시간이나 기억을 상징하는 요소로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그 흐름이 멈추면서 잠시 시간 속에 갇히거나 정체된 감정을 표현한다.
"혹여나 궁금해진다면, "
이 문장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듯한 톤을 취하고 있다. 시인은 대상이 느낄 호기심을 예상하며, 이러한 감정의 생성을 암시한다. 시 속 인물은 마치 상대방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듯하며, 독자는 이러한 감정의 미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의 이러한 구절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대와 불확실성을 표현한다.
"그 꽃잎 뒤에 나도 숨어서 숨죽이고 있었단 걸 기억해 줘."
꽃잎 뒤에 숨어 있다는 표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 속에 숨어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지만, 동시에 상대방에게 자신을 인식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내면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그 안에서 깊이 흐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숨죽인다는 표현은 그만큼 긴장과 설렘이 공존하는 순간을 표현하며, 상대방이 알아채 주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네가 뒤돌아보는데"
시적 주체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뒤돌아보다'는 단순히 시선을 돌리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 변하거나 과거의 순간을 되돌아보는 행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구절은 상대방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내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낯선 속삭임이 스쳤다면, "
여기에서 속삭임은 감정의 표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낯선’이라는 수식어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거나 예상치 못한 감정의 표출을 의미한다. 이 속삭임은 시적 주체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며, 상대방이 그것을 느꼈다면 이는 관계 속에서의 새로운 감정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어디선가 네 이름을 부르는 소리라면, "
시 속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존재를 불러내는 행위로써, 단순한 소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름은 개별적이고 독특한 존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는 상대방에게 강력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이 상대방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그 목소리가 닿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그건 내가 그림자 속에서 널 부르고 있는 거라고 믿어줘."
여기서 ‘그림자 속’은 숨겨진 감정의 장소로 나타난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지만, 그것이 여전히 존재하며 표현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림자는 본질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시적 주체의 감정의 표현으로 사용됨으로써 그 감정의 실재성을 강조하고 있다.
"깊은 밤, "
밤은 고독과 은밀함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시적 공간에서 밤은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운 시간이며, 고요 속에서 더욱 깊은 내면을 탐색하게 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이러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독자는 그 고요 속에 흐르는 감정의 진동을 느끼게 된다.
"가로등 불빛만이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을 때, "
가로등 불빛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로,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상징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불빛은 두 사람의 감정이 남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존재함을 암시한다. 시인은 이 순간이 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너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여기서 심장의 두근거림은 감정의 고조를 의미한다. 사랑이나 설렘, 긴장 같은 감정들이 심장을 뛰게 한다는 표현은 매우 직관적이며, 독자는 시인이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감정의 변화는 시적 긴장을 강화하고, 그 순간의 감각적 경험을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면, "
숨결은 매우 개인적이고 가까운 접촉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는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감정이 전달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숨결은 그 자체로 친밀함을 상징하며, 이는 시적 주체가 상대방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갔음을 의미한다. 감정의 물리적 표현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건 내가 너에게 가까워졌다는 아주 작은 신호일 거야"
작가는 감정의 흐름이 점점 상대방에게 가까워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작은 신호’라는 표현은 이 감정이 아직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시인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매우 섬세하고 신중하게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W시인의 '그림자 속 속삭임'은 숨겨진 감정과 그것이 상대방에게로 향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작은 자연의 이미지와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통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전달하고 있다.
시적 주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강렬한 감정의 흐름이 존재하며, 이는 그림자와 같은 은유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표현된다. 또한 시 속에서 시인은 언어의 감각적인 사용을 통해 독자가 감정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실재하고 있으며,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 시는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유기적인 구조를 가지며, 각 행이 서로 연결되어 독자에게 강력한 감정적 울림을 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