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초 시인의 '가을이 여름에게'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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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여름에게
시인 안혜초
그대 이젠 그만 아쉬워하고
떠날 채비를 해요
때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또 돌아오게 되리니
더 이상 망설이지도 말고
더 이상 돌아보지도 말고
즐거운 여행길에 오르듯이
후울훌 가벼이 떠나가요
해 돋는 그 나라
생명이 움트는 그 나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그대 여름 내내 땀 흘려
꽃 피워낸 자리마다엔
내 진정 탐스럽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알알이 맺어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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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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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월간 '순수문학' 2013년 9월호에 실린 권두시다.
안혜초 작가는 삶의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원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인간과 자연의 순환 속에서 존재하는 조화와 이별, 그리고 재생을 담고 있다. 안혜초 시인의 작품은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감정을 연결하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깨달음을 섬세하고 고요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감정, 그 속에서 존재하는 철학을 담아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시의 첫 구절, "그대 이젠 그만 아쉬워하고 떠날 채비를 해요"는 여름에게 가을이 건네는 권유로 시작된다.
여기서 ‘그대’는 여름을 의인화한 존재로, 이 구절은 여름이 아쉬워함을 나타내며, 더 이상 머무르지 말고 떠날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장면에서 시인은 자연의 필연적인 순환, 계절의 변화 속에서 발생하는 이별을 묘사하고 있다. 이별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를 동반하지만, 시인은 이를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의 자세를 강조한 시인의 가치철학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또 돌아오게 되리니"는 시간의 순환성을 이야기한다.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는 정해진 주기에 따라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시인이 자연에서 배운 인생의 진리를 담아내는 구절로, 우리는 언젠가 떠나야 할 운명이지만, 그 떠남은 곧 다시 돌아옴을 의미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시인은 여기에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더 이상 망설이지도 말고 더 이상 돌아보지도 말고"라는 구절은 이별의 순간에 주저하지 말라는 권고이다.
이는 인생에서의 결단과 용기를 요구하는 구절로, 망설임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인의 신념이 엿보인다.
이 부분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멈춰 서지 말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생철학을 담고 있다.
"즐거운 여행길에 오르듯이 후울훌 가벼이 떠나가요"는 이별의 순간을 여행에 비유함으로써 그 감정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시인은 이별을 더 이상 슬픔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으로 여긴다. 이 구절에서 시인의 긍정적인 인생관이 분명히 드러나며, 떠남 또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는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해 돋는 그 나라 생명이 움트는 그 나라 동쪽으로 동쪽으로"는 새로운 출발지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해 돋는 나라’, ‘생명이 움트는 나라’는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다시 시작하는 생명의 출발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희망과 재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시인의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드러난다.
"그대 여름 내내 땀 흘려 꽃 피워낸 자리마다엔"은 여름이 이룬 성과를 나타낸다. 시인은 여름을 단순히 더운 계절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계절 동안의 노고와 열정이 결실을 맺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이는 인생에서의 노력과 성취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구절로, 시인이 자연 속에서 발견한 인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내 진정 탐스럽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알알이 맺어주리니"는 여름의 노력이 가을에 결실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시인은 자연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결실과 보상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구절은 시인의 자연에 대한 경외와 더불어, 인생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계절의 변화 속에서 이별과 재생, 그리고 성취를 담고 있다.
시인은 여름과 가을의 대화를 통해 자연의 순환 속에서 발생하는 이별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새로운 시작과 성장을 위한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의 표현은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자연의 질서와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시의 감성적 측면에서, 시인은 이별의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시의 이미지들은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지며, 독자는 그 이미지들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자연의 순리 속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지혜를 이 시를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연의 순환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인생의 진리이다. 시인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을 투영시키며, 그 속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시인의 표현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시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삶의 이치와 철학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지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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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초 시인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현대문학 3회 추천완료.
세계 여기자 작가 한국지부 부회장 역임
한국 PEN자문위원,
한국현대시협 지도위원
시집 :
귤ㆍ레먼ㆍ탱자, 달 속의 뼈, 쓸쓸함 한 줌,
푸르름 한 줌 살아있는 것들에는 등 8권 한영대역시집 중국어역시집
수상;
윤동주문학상,
PEN문학상
영랑문학상 대상
기독교문학상 대상
문학 21상 대상
이화를 빛낸 상
한국문학예술상 대상 등 다수 수상.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