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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바람

청람 김왕식








꿈의 바람







도시의 뒷골목, 퇴락한 판자촌의 돌길 틈새에 조용히 자리 잡은 한 뿌리의 민들레가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잊은 공간이었다.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발길조차 끊긴 그곳에서 민들레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고요한 곳에서 민들레는 자신만의 작은 꿈을 품고 있었다.

민들레는 외로웠다. 옆으로 돌담길을 따라 지나가는 무심한 발걸음들이 민들레를 밟을까 두려워 몸을 움츠리곤 했다. 아무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았고, 혹시라도 그 작은 몸이 땅에 깔려 짓밟힐까 걱정했다. 그러나 민들레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했다.
“난 버텨낼 거야. 세상에 꽃이 핀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야.”

판자촌 사람들의 삶도 민들레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좁은 방에 살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뎠다. 지친 얼굴에 주름이 늘고, 체온으로 버티는 긴긴 겨울밤을 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채로 묵묵히 버텨냈지만, 민들레는 그들이 매일매일 살아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희미한 한숨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들의 숨 속에는 언제나 다음 날을 향한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민들레는 깨달았다. "나도 저 사람들과 같아.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잖아." 민들레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작은 몸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것도 큰 일이었다. 그 또한 생명을 품고 있으며, 그 생명을 더 오래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존재였다.

세상은 여전히 차가웠다. 민들레의 키는 여전히 작았고, 그늘진 골목에서 누구도 그를 알아봐 주지 않았다. 발걸음들이 민들레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은 물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몸을 흔들며 위태로웠다. 그러나 민들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난 민들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자리에서 꿋꿋이 버티고, 꽃을 피우는 거야.”

밤이 깊어질수록 골목은 더욱 고요해졌다. 그날도 둥근달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판자촌의 사람들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낡은 대문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 사이, 민들레는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작지만 단단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차가운 달빛 속에서 민들레는 오히려 따뜻한 희망을 느꼈다. "내 꿈은 이 달빛 속에서도 빛나고 있어."

계절은 흘러가고, 세상은 계속 변해갔다. 어느새 봄이 찾아오고, 민들레는 그동안 내렸던 비와 지나간 바람 속에서 몸을 더욱 단단히 키워왔다. 그리고 마침내 민들레는 첫 꽃을 피웠다. 작고 소박한 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꽃은 아니었지만, 민들레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꽃이었다. 그 꽃 속에는 그동안의 모든 고난과 인내, 그리고 꿈이 담겨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민들레는 그 바람을 타고 자신의 꽃씨를 멀리 흩날렸다. 그 꽃씨들은 판자촌 너머로, 또 다른 골목길과 거리로 날아갔다. 민들레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됐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그리고 그 순간, 민들레는 잠시 눈을 감았다. 조용한 만족과 함께. 자신이 남긴 꽃씨들이 언젠가 더 넓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처럼 작은 꿈을 키워갈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로도 판자촌의 사람들은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만의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들은 언젠가 민들레처럼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살아갔다.

골목을 지나는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은 문득 작은 꽃 한 송이가 돌담 틈새에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저 지나칠 법한 작은 꽃이었지만, 그 꽃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작은 꽃도 자신의 꿈을 이루어냈구나.' 그 꽃이 단순한 잡초가 아니라 민들레의 꿈이라는 것을 그도 알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도심의 골목에는 민들레처럼 작고 소박한 꿈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꿈은 그렇게 또 다른 꿈을 싹 틔우며, 세상을 조금씩 바꿔갔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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