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경 시인의 시 '양귀비꽃'을 청람 평하다
박은경 시인과 문학평론가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Aug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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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꽃
시인 박은경
애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설과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엘리트였다는
소문을 걸고 다니는 여인
자동차 엔진 소리도 음악이 되어
제집 안방처럼 편하게 잠들어 있는 여자
오가는 사람들 잠시 눈길 멈춘다
난간 위 꽃들도 숨 막혀 아우성치는데
살갗에 물방울이 맺혀
뜨거움을 발사하는 다리 위에서
털점퍼를 뒤집어쓰고도 익숙한 몸돌림이다
한살림 차린 청색 비닐봉지와
이가 엇나가 잠기지 않는 여행가방 지퍼
사이로
빨강 드레스가 삐죽 내밀고
잡동사니 널브러져 있는 자리엔
말라버린 양귀비꽃 헐떡거린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장마가 시작이라는데
꽃은 어디에 누워야 하나
먹다 남은 빵조각에 드리운 그림자
손과 입 사이를 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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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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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시인의 시는 깊고 야무지다.
가녀린 듯 힘세다.
시 '양귀비꽃'은 일상 속의 비애와 고독을 양귀비꽃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박은경 시인은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 특히 여성의 삶과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이 시는 시인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의해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의 내면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양귀비꽃'이라는 상징을 통해 외면적으로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내면적으로는 상처받고 말라가는 존재의 이중성을 탐구한다.
"애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설과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엘리트였다는
소문을 걸고 다니는 여인"
첫 구절은 여인의 복잡한 정체성과 그녀를 둘러싼 소문들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애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소문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립된 여인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트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져 있다.
이 대조적인 이미지들은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을 규정짓는 다양한 시선과 오해들을 상징한다.
이 시점에서 박은경 시인은 여성의 자아가 단순히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 복잡성을 인정하는 시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자동차 엔진 소리도 음악이 되어
제집 안방처럼 편하게 잠들어 있는 여자
오가는 사람들 잠시 눈길 멈춘다"
여인의 일상은 외부 세계와의 불협화음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동차 소음조차도 음악처럼 들리는 이 여인의 태도는 외부의 소음 속에서 자신만의 고요함을 찾아가는 그녀의 내면세계를 암시한다. 또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의 삶이 단순히 평범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시인은 이 대목을 통해 여인이 사회에서 얼마나 이질적으로 여겨지는지를 강조하면서도, 그 속에서 그녀가 찾은 일종의 내적 평온함을 암시하고 있다.
"난간 위 꽃들도 숨 막혀 아우성치는데
살갗에 물방울이 맺혀
뜨거움을 발사하는 다리 위에서 털점퍼를 뒤집어쓰고도 익숙한 몸돌림이다"
난간 위의 꽃들은 숨 막힌다는 표현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나타낸다. 이는 여인의 억눌린 감정과 연결되며,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에도 여인은 "익숙한 몸돌림"을 보여주며, 고통 속에서도 일상을 살아가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박은경 시인은 여성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암시하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고독과 상처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살림 차린 청색 비닐봉지와
이가 엇나가 잠기지 않는 여행가방 지퍼 사이로
빨강 드레스가 삐죽 내밀고"
여기에서 청색 비닐봉지와 잠기지 않는 여행가방은 여인의 불안정한 삶을 상징한다. 이는 그녀의 삶이 정착되지 않고, 늘 떠돌이처럼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또한 빨강 드레스는 그녀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이나 감정을 암시하는데, 이는 그녀의 삶이 겉보기와는 달리 여전히 뜨거운 감정을 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잡동사니 널브러져 있는 자리엔 말라버린 양귀비꽃 헐떡거린다"
잡동사니는 여인의 혼란스러운 내면 상태를 반영하고, 말라버린 양귀비꽃은 그녀의 쇠약해진 정신적, 육체적 상태를 상징한다. 양귀비꽃이 헐떡거린다는 표현은 그녀가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여인이 겉으로는 무너져 보일지라도, 내면의 강한 생존 본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장마가 시작이라는데
꽃은 어디에 누워야 하나"
여기서 비바람과 장마는 시련과 고난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 여인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태를 표현한다.
이는 인간이 겪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자신을 지탱할 곳을 찾지 못하는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을 드러낸다.
"먹다 남은 빵조각에 드리운 그림자 손과 입 사이를 벌려놓는다"
먹다 남은 빵조각은 여인의 결핍과 부족함을 상징하며, 그녀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손과 입 사이의 간극은 여인의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乖離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간극間隙은 채워질 수 없는 결핍缺乏을 암시하며, 시인은 이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상실감을 부각한다.
박은경 시인의 '양귀비꽃'은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여인의 내면을 섬세하고 진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양귀비꽃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여인의 고통과 외로움을 드러내면서도, 그녀가 겪는 내적 갈등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인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복잡한 정체성을 탐구하면서, 그녀가 겪는 시련과 고통을 진실하게 묘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여인이 가진 강한 생명력과 내면의 뜨거움을 통해 희망을 암시하며, 그녀가 결국 스스로를 지탱支撐하고 살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잘 드러내며, 독자로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