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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모옴(Somerset Maugham)과 폴 고갱

청람 김왕식











서머싯 모옴(Somerset Maugham)의 소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와 폴 고갱(Paul Gauguin)






서머싯 모옴(Somerset Maugham)의 소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는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작품으로, 두 예술가의 상관관계는 단순한 전기적 접근을 넘어서, 그들의 예술 세계와 내면적 갈등을 탐구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를 제공한다.

서머싯 모옴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영국 작가로, 현실적이고 간결한 문체로 당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을 주로 남긴다. 특히 『달과 6펜스』는 예술가의 삶과 내면의 고통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사회적 통념과 개인적 욕망 사이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Charles Strickland)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는 기존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예술을 향해 뛰어든다. 스트릭랜드의 이 모습은 고갱의 실제 삶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폴 고갱은 19세기말 활동한 프랑스의 후기파 화가로, 그의 예술적 여정은 전형적인 '예술을 위한 삶'의 모습이다. 고갱은 처음에는 증권 중개인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지만, 어느 순간 예술에 대한 열망을 느끼고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는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로 향하며, 이국적인 풍경과 토착 문화를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고갱의 그림은 당대 인상주의와는 달리, 원색의 강렬한 사용과 원시적이고 상징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그가 문명 세계를 떠나 자연과의 일체감을 추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달과 6펜스』에서 모옴은 고갱의 이 예술적 여정을 바탕으로, 사회로부터 도피하고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추구하는 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낸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파리로 떠나고, 점차 문명사회와의 단절을 심화시키며, 결국 남태평양의 섬으로 향한다. 이 과정은 고갱이 실제로 겪었던 삶의 궤적과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모옴은 단순히 고갱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예술가의 내면세계, 특히 예술을 향한 열망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를 버리고, 심지어 인간적인 도덕적 규범까지 초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행동은 비이성적이고 냉혹해 보일 수 있지만, 모옴은 그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고갱 또한 자신의 예술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족을 떠나고,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위치를 포기하며, 외딴섬으로 가서 원시적 삶을 선택한다. 이는 그가 문명의 틀 안에서는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의 이러한 결단은 모옴의 스트릭랜드와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그러나 고갱의 그림에서 보이는 원색의 강렬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그가 단순히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정한 예술적 해답을 찾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고갱의 작품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했지만, 곧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다. 그는 타히티에서의 삶을 통해 유럽 문명에서 벗어난 순수한 인간의 상태를 탐구하려 했고,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원시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다. 고갱의 그림 속 인물들은 현실적인 묘사보다는 그의 내면적 비전을 반영하며, 이는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추구하는 예술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모옴은 소설에서 스트릭랜드를 중심으로 예술가가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트릭랜드는 가족과의 관계를 끊고,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이는 모옴이 예술을 단순한 취미나 직업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열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옴은 스트릭랜드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예술가의 존재가 단순히 사회적 틀 안에서 정의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고갱과 모옴이 공유하는 주제는 바로 '자유'와 '개인적 진실'이다. 고갱이 문명사회에서 벗어나 타히티에서 자신의 예술적 진실을 찾으려 한 것처럼, 모옴의 스트릭랜드 또한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고갱은 그의 건강과 가족을 잃었고, 모옴의 스트릭랜드 역시 사회적 연결을 모두 끊어야 했다.

결국, 『달과 6펜스』와 고갱의 삶은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적 요구와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어떻게 갈등하고, 그 갈등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자신의 예술을 위해 삶의 안정과 인간관계를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이는 예술이란 것이 단순히 기술이나 재능 이상의, 인간의 존재를 뒤흔드는 본질적인 힘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모옴은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창조했지만, 그의 소설은 단순한 전기적 소설을 넘어, 예술가의 삶과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철학적 소설로 읽힌다. 고갱의 작품 역시 단순한 풍경이나 인물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가 느꼈던 예술적 고뇌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두 사람의 예술 세계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표현되었지만, 그 핵심에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모옴의 문학과 고갱의 회화에서 각각 다르게 표현되지만, 그들이 추구한 예술적 진실은 시대와 매체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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