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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의 '나도 그랬었지'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나도 그랬었지




시인 배선희





지하철 올라가는 계단에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는 아가씨를 보며.

나도 저 나이에는 그랬었지?

손이 꽁꽁 나도 그랬었지 추운 날에
얇은 스타킹 하나에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를 보며.
나도 그 나이에는 그랬었지?

치마에 주름이 생길까 봐
빈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고
서서 애써 편안한 척하는
멋쟁이 아가씨를 보며
아! 나의 젊은 날도 그랬었지!

연예인 사진을 책갈피에 꽃아 두고
틈틈이 꺼내어 내려다보며
살포시 미소 짓는 여고생을 볼 때.
나도 여고시절 누군가에게서 온 편지를 읽다가
오빠에게 들켜 벌서던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연필을 돌리며 다리를 까닥거리며
팝송을 듣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다이얼 1161 박준홍입니다"에
잘 알지도 못하던 노랠 신청하던 그때가 있었지?

비 오는 날 밤,
수신인도 없는 편지에 밤을 사 담으면서 문틈 새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감동하던
어여쁜 두 가닥 땋은 머리 여고시절
그때 쓴 그 편지는 아직도 있으려나?

철없는 아이들의 조잘대는 얘기를 들으며

낙엽만 폴폴 날려도 까르르 숨넘어가던~~
그땐 나도 그랬었지?

논산 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나의 철없던 시절이 떠올라 유리창에 긁적거려 보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배선희 시인은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장면들을 통해 우리의 삶과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 현재의 감정과 현실의 충돌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 시에서는 지하철 계단에서, 버스 안에서, 비 오는 밤의 창가에서처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장면들을 통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끌어낸다.
특히 그녀의 시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내면과 청춘의 무모함과 아름다움을 따뜻하게 묘사하는 점이 돋보인다. 시인은 이러한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삶의 순수하고 무구한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지하철 올라가는 계단에서"라는 구절은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장면을 배경으로 시가 시작됨을 알린다. 이어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는 아가씨를 보며"라는 묘사를 통해 젊음의 상징인 미니스커트가 등장한다.
이는 젊음의 무모함과 자신감을 상징한다. "나도 저 나이에는 그랬었지?"라는 회상은,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시인의 시각을 나타낸다. 여기서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현실을 마주한 시인의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손이 꽁꽁 나도 그랬었지 추운 날에"로 시작해 추운 날씨에도 패션을 위해 얇은 스타킹과 하이힐을 고집하는 아가씨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젊음의 무모함과 자신만의 미적 기준을 고수하려는 마음을 상징한다. "나도 그 나이에는 그랬었지?"라는 반복된 표현은, 젊은 시절의 자신이 얼마나 철없고 무모했는지를 돌아보는 동시에 그 시절의 감정을 따뜻하게 회상하는 시인의 감정이 드러난다.

"치마에 주름이 생길까 봐 빈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고 서서 애써 편안한 척하는"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는 젊은 날의 외적 아름다움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던 시절을 상징한다. 젊음이란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려 노력하는 시기임을 보여준다.
"아! 나의 젊은 날도 그랬었지!"라는 감탄은, 당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그리워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연예인 사진을 책갈피에 꽃아 두고 틈틈이 꺼내어 내려다보며 살포시 미소 짓는 여고생"은 청소년기의 감수성을 극대화시킨다. 이는 우상화와 동경의 대상을 마음속에 품으며 순수한 감정으로 가득 찬 시기를 상징한다.
"나도 여고시절 누군가에게서 온 편지를 읽다가 오빠에게 들켜 벌서던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라는 문장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이 구절은 시인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연필을 돌리며 다리를 까닥거리며 팝송을 듣는 아이들을 보면서도"로 시작해 자유분방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그 속에 있는 감정의 흐름을 포착한다. "다이얼 1161 박준홍입니다"라는 당시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시인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감성과 문화를 불러일으킨다.
"잘 알지도 못하던 노랠 신청하던 그때가 있었지?"는 무작정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비 오는 날 밤, 수신인도 없는 편지에 밤을 사 담으면서 문틈 새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감동하던"은 고독하고 감성적인 청춘의 한 장면을 그린다. 여기서 "어여쁜 두 가닥 땋은 머리 여고시절 그때 쓴 그 편지는 아직도 있으려나?"라는 질문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히지 않는 감정과 기억의 소중함을 표현한다.

"철없는 아이들의 조잘대는 얘기를 들으며 낙엽만 폴폴 날려도 까르르 숨넘어가던~~"이라는 구절을 통해 어린 시절의 무구한 기쁨과 순수함을 상징한다.
이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다. "그땐 나도 그랬었지?"라는 물음은 독자들에게도 동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논산 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나의 철없던 시절이 떠올라 유리창에 긁적거려 보네!"라는 마무리는 현재의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경험을 회상하며 그리움과 아련함을 느끼는 시인의 모습을 그린다.
이 구절은 시의 전체적인 흐름을 마무리 짓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감정의 본질을 담아내고 있다.

이 시는 배선희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따뜻한 시선을 잘 보여준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회상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반복적인 구절 사용으로 리듬감을 주어 감성적인 몰입을 돕는다.
또한, 시 전체가 일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 개개인의 추억과 감정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시인의 가치철학이 드러난다.
배선희 시인은 시간을 초월한 감정의 연대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시인이며, 이 시는 그러한 그녀의 문학적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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