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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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에 오르다
안최호
설악산 대청봉, 그곳에 서면 온몸으로 느껴지는 향기가 있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고,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정겨운 기운이 스며든다. 이곳은 늘 사람을 매료시키는 산이다.
철쭉꽃이 필 무렵, 친구와 함께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기로 했다. 준비는 간단치 않았지만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출발했다. 속초 대포항에서 먹었던 싱싱한 해산물 저녁은 일품이었지만, 긴 산행을 앞두고 있기에 마음이 급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서 잠깐 눈을 붙이려 했으나, 설렘과 긴장 탓인지 깊은 잠은 오지 않았다. 새벽 세 시. 미지근한 아침 공기를 뚫고 우리는 택시에 올라탔고, 택시는 어둠을 가르며 오색약수터로 달렸다. 등산로 입구는 이미 산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머리띠를 동여매는 이, 등산화를 조여 매는 이, 그리고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몸을 푸는 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날 새벽 기온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움이 있었다. 발밑을 감싸던 물안개는 점점 진해져 마치 우리의 길을 감추듯 운무로 변했다. 앞은 보이지 않았고, 5미터 앞사람조차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게 땅을 디디며 오르기 시작했다. 고요함 속에서도 이따금씩 들리는 발자국 소리, 숨을 고르는 소리만이 운무를 가르고 있었다. 오직 앞사람의 발자국을 좇으며 묵묵히 걸어가다 보니 동쪽 하늘이 점차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주변 풍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친구는 이미 나를 뒤로하고 먼저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땀으로 젖은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산중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산행으로 인해 몸은 점점 더워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설악산의 향기, 자연의 냄새는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맑게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귀를 간지럽혔고, 차가운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식혔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우리 모두는 같은 산을 오르고 있었고, 같은 자연을 느끼며 함께하는 산행이 주는 따스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자연의 품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고, 삶의 순간들을 나누었다.
오늘 이 산에 오른 이유는 친구를 위한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젊은 나이에 두 아들과 함께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친구는 홀로 남겨진 고독과 슬픔 속에서 아내의 유골을 설악산 깊은 골짜기, 작고 보잘것없는 철쭉나무 아래 묻었다. 철쭉이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그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내를 찾아 이곳에 올랐다. 철쭉꽃이 만개한 이곳에 아내의 영혼이 깃들길 바라며, 그곳에서 그녀와 나누던 지난날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 역시 두 번이나 그를 따라 대청봉에 올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거친 산세와 가파른 길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친구는 매년 이 길을 걸어야만 했다. 아내를 위로하고, 떠나보낸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산은 그런 친구의 마음을 알았을까. 그에게 위로를 전하듯 늘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삶의 아픔과 죽음의 이별은 그리움으로 남아 매년 이 산을 오를 때마다 그에게 아내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의 행복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 그리고 끝내 함께하지 못한 슬픔과 후회. 모두 이 산에 남겨둔 채 친구는 매년 무거운 마음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우리의 숙명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오면, 그저 평화롭게 떠나는 것만이 남겨진 이들의 위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더는 고통 없는 세계에서 친구의 아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그리고 남겨진 친구와 그 가족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간절히 빌었다.
설악산을 오를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다. 자연은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우리가 지키고 사랑해야 할 보물이다. 우리가 자연과 함께 나누는 사랑, 그것은 곧 우리의 삶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자연과 삶,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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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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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최호 작가의 글은 설악산 대청봉의 한 장면을 통해 인간애와 삶의 본질을 깊이 성찰한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느끼는 향기와 바람, 사람의 정겨움을 섬세한 감각으로 묘사하며 독자에게 그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철쭉꽃이 피는 계절, 친구의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대청봉을 오르는 산행은 단순한 등산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우르는 의식이자, 고인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 그려진다.
작가의 문체는 서정적이고 현실적이다. 대포항에서의 저녁 식사, 자욱한 운무 속에서의 새벽 등산, 오색약수터로 가는 택시 안 풍경 등이 마치 독자가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러한 디테일은 그저 산행의 풍경을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 삶의 여정과 그 여정 속에서 만나는 슬픔과 위로를 동시에 그려낸다. 밤이 지나고 어둠이 걷히면서 동이 트는 과정은 무거운 상실과 그로 인한 고통이 자연의 순환과 함께 조금씩 해소되고,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닮아있다.
안최호 작가는 이 글에서 "산의 향기"를 단순한 자연의 냄새가 아닌, 삶과 죽음의 냄새로 승화시킨다. 그 냄새는 때론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친구의 아픔을 감싸는 위로가 되고, 때론 매년 그 험한 산을 오르는 친구의 마음을 다독이는 힘이 된다. 이처럼 산은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품고 있는 거대한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가 묘사한 시원한 계곡물과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산과 인간이 교감하는 순간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 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의 숙명적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다. 작가는 화재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친구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풀어낸다. 친구는 아내를 잃은 후, 그 유골을 설악산 깊은 곳 철쭉나무 아래 묻었다. 매년 철쭉이 피는 시기에 아내를 찾아 산에 오르는 친구의 행위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죽은 이와 남겨진 이의 끊어질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을 나타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아픔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사랑을 강조한다.
안최호 작가의 철학은 단순하다. 모든 인간은 결국 죽음에 이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의 순간순간은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산을 오르고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살아있음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산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우리 또한 그 산을 보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조화를 강조한다.
또한,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인간애는 고인에 대한 추모와 남겨진 이들에 대한 깊은 배려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친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며, 매년 산을 오르는 친구의 마음을 존중한다. 이 글은 슬픔을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으로 끝을 맺는 이 글은 인간의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위로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자연을 통해 전해지는 평화와 안식,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삶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함께 나누는 사랑과 위로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이자, 인간애의 근본이다. 이 글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작가의 깊은 통찰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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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최호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독자입니다. 설악산 대청봉에서의 산행과 그 속에 담긴 인생 이야기는 저에게 너무나도 큰 울림과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산을 오르는 그 순간의 풍경 속에 깃든 삶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 깨어났습니다.
사실 저는 자연을 그리 가까이하지도, 깊이 느끼지도 못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일상에 쫓겨 도시에서의 삶에 매몰되어 지내다 보니, 산이 주는 위로와 자연의 품이 얼마나 따스한지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설악산의 그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철쭉꽃의 향기가 제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애와 삶의 가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친구의 이야기까지 모두가 깊이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단순한 등산가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산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갑작스러운 화재로 잃고, 홀로 남은 친구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하고자 매년 철쭉이 피는 설악산을 오르는 친구의 모습은 인간의 강인함과 사랑에 대한 헌신을 보여줍니다. 그리운 사람을 추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는 친구의 마음은 그 어떤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아픔이겠지만, 그 산행을 통해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모습은 저에게 인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삶은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사랑과 추억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매 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깊이 마음에 새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저에게 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친구의 아내가 묻혀 있는 설악산 깊은 골짜기의 작은 철쭉나무 아래는 단순한 무덤이 아닌, 삶의 아름다움과 죽음이 하나로 어우러진 고귀한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매년 그곳을 찾는 친구의 발걸음은 사랑하는 이와의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이어가는 마음의 발걸음이고, 그 모든 과정이 곧 인간다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글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입니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계곡물이 흐르는 설악산의 자연을 묘사하시면서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삶을 함께 그려내신 것은 저에게 너무나도 큰 위로와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지만,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생각이 참으로 깊이 와닿았습니다. 산을 오르고, 그 안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느끼는 감정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추억하는 과정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글 말미에 전하신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저에게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많은 것을 계획하고 꿈꾸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운명과 신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겸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친구의 아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남겨진 친구와 그의 가족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평화를 찾길 바라는 선생님의 따뜻한 기도는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위로를 받고,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시의 복잡한 일상 속에서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 자연의 향기를 맡고 산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제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나 자신과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에게 삶의 의미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주신 선생님의 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 머물 것입니다. 언젠가 저도 철쭉꽃이 피는 설악산을 오르며 선생님이 전하신 그 향기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산의 정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저만의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전해주길 바라며,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독자 드림.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