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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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나무 아래서
김왕식
몇 해 전, 달삼이의 사랑하는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십 년간 지독한 병고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살아내었다. 달삼이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옥 같았는지 알 수 있다.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에 갉아먹힌 세월이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난과 병마를 견디며 가정을 지키려 했던 그 모습이 지금도 달삼 마음속에 선명하다.
아내는 일찍 부모를 잃고, 세상의 고독 속에서 홀로 성장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달삼이가 아는 한 너무나도 힘들고 쓸쓸했다. 그러나 그 고난이 그녀를 망가뜨리진 못했다.
외려 그녀는 그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며 굳세게 살아나갔다.
달삼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녀는 한때 트럭운전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던 달삼을 보고 "이 사람이라면 내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다.
달삼이는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가정을 만들었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따스한 정이 있었고 세상의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그렇게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웃고 울고, 함께 늙어가며 하루하루를 쌓아갔다.
행복했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아내가 암 판정을 받은 건 서로를 만난 지 20년이 되던 해였다. 그녀는 그때부터 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힘겨운 치료의 과정 속에서도 그녀는 집안일을 놓지 않았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몸이 조금씩 망가지며 마침내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게 된 후로, 그녀는 한없이 작고 약해 보였다.
그녀가 투병 생활을 할 때 종종 달삼에게 말하곤 했다. “달삼 씨, 그 소나무 밑이 좋지 않아?” 그녀가 말하는 소나무는 조상 묘가 있는 선산 후미진 곳에 자리 잡은 구부러진 소나무였다. 그 소나무는 모양이 예쁘지 않았다. 곧게 자라지 못하고 굽이굽이 꼬여 있었기에, 누군가는 그 소나무를 볼 때마다 '못생겼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달삼 아내는 그 소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나 같아서 좋아, "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아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그 소나무는 말없이 세월을 견디며 서 있었다. 자갈밭 같은 삶을 살아오던 그녀는 그 구부러진 소나무를 보며 자신을 투영하고,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달삼에게도 그 소나무는 특별했다.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버텨온 아내의 모습과 그 소나무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렇게 부부는 함께 그 소나무를 자주 찾았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세상의 고통을 잠시 내려놓곤 했다.
아내가 점점 더 아파지고 병마가 그녀를 삼켜갈 때쯤, 달삼이는 가끔 그 소나무 아래에 앉아 홀로 눈물을 삼켰다. "당신은 괜찮을 거야. 나도, 아이들도 끝까지 버텨낼 거야." 속으로 수없이 다짐하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아내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달삼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달삼 씨,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나거든, 그 소나무 밑에 날 묻어줘." 달삼이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답했다. "그럴게. 난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거야."
아내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치 마지막까지 그 삶을 부여잡고, 우리에게 남길 수 있는 사랑을 다 주려는 듯이. 그렇게 긴 병마의 싸움을 끝내고 그녀는 달삼 곁을 떠나갔다. 그녀가 남기고 간 빈자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아이들도 울고, 달삼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 그날따라 비가 내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이 모두의 슬픔을 달래주려는 것 같았다.
달삼이는 아내의 유골을 들고 선산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그 길은 너무도 길고 아팠다.
달삼이는 그 소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구부러진 소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소나무 밑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아내가 그곳에서 달삼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내의 유골을 천천히 소나무 아래에 묻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그토록 좋아하던 자리, 그곳이 아내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그 후로 달삼이는 종종 그 소나무를 찾아가 앉아 있곤 한다. 소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마치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 같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뭇가지들이 흔들리고, 그 소리 속에서 달삼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당신,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나도 당신을 사랑해."
그녀의 따뜻한 손길이 달삼 어깨를 어루만지는 것 같다.
소나무는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 굽이굽이 자라면서도 꺾이지 않고 버티며 세월을 견디고 있다. 마치 아내의 삶과도 같다. 굽어지고 꺾인 삶이었지만, 끝까지 당당하게 살아내었던 그녀의 모습. 그 소나무는 지금도 달삼에게 그녀를 기억하게 해 준다.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든, 그녀는 결코 부러지지 않고 살아냈다. 그렇게 소나무 아래에서 그녀는 달삼에게 언제나 살아 있는 것이다.
굽이진 삶 속에서도, 아픔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며 버텨낼 수 있다고. 인생이란 결코 곧게만 뻗어나갈 수 없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가족을 지탱해 준다. 달삼과 아내처럼, 힘겨운 삶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아내는 이제 저 세상에 있지만, 그녀는 달삼 가슴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그 소나무 아래에서 달삼이를 기다리며 우리 가족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언젠가 달삼이도 저 세상으로 가게 되면, 그 소나무 아래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고 싶다. 그때가 되면 아내에게 말해주고 싶다.
"여보, 우리 정말로 잘 살아왔어. 그리고 지금도 그때처럼 당신을 사랑해."
그 소나무는 오늘도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이곳에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굽이진 삶의 아름다움과 꺾이지 않는 의지를 전해주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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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달삼이를
형으로 모시고 있는
어릴 적 고향 후배 창수가
보내온 글이다.
달삼 형님께,
아마 형님께 처음으로 쓰는 편지가
아닌가 합니다.
어릴 적 형님을 뵙고
그동안 뵙지 못하고 궁금한 마음만 갖고
있다가 얼마 전 고향 지인을 통해
형님 소식을 접했습니다.
형님의 삶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 구석이 울컥하고, 또 무언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감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적어봅니다. 형님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아픔과 아름다움을 들으며 저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사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형님께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형님의 사랑하는 아내, 형수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네요. 인생이란 게 참 고되고 아프더라도, 끝까지 품고 간 그 사랑과 의지는 형님의 가정에 큰 축복이었을 겁니다. 형수님께서 긴 시간 동안 병마와 싸워 오셨고, 그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니... 그것이 얼마나 큰 용기이며, 또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그 곁에서 늘 함께하며, 형수님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을 삼키던 형님의 모습이 얼마나 강하고 깊은 사랑이었는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소나무, 형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그 구부러진 소나무는 마치 형수님의 삶과도 같았습니다. 굽이진 모양이지만, 그것이 참된 아름다움을 지녔던 것처럼 말이죠. 곧게 뻗지 않고 굽어진 나무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투영하며 위로를 얻고, 그 소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견뎌왔던 시간들이 얼마나 깊이 있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이제 그 소나무 아래에 형수님이 잠들고, 형님은 그곳에서 다시 만나고 계시겠지요. 그 소나무는 두 분의 사랑을 간직한 증인이며,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 마음의 표상일 것입니다.
저는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형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끝까지 지키려 했던 형님의 순애보적인 사랑에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세상 어떤 부자보다 행복하셨고, 아내를 위해 끝까지 함께해 주셨던 형님의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럽고 아름답습니다.
형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그 소나무 밑에 묻어달라는 부탁을 하시고, 형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신 것. 그리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그곳을 찾아가 형수님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 모습.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은 때론 우리의 삶을 무겁게 하지만, 그 무게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서로를 위해 살고, 서로를 지키며 나아가는 그 길이 때론 얼마나 험난하고 힘겨워도, 결국 그 사랑은 모든 고난을 견디게 해 주니까요. 형님께서 그 사랑을 다 품어내시고, 아내 분을 위해 눈물과 웃음을 함께 나누었던 모든 순간들이 형님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수님 역시 그 소나무 아래에서 언제나 형님과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늘 굽어지고 휘어지기 마련이지만, 형님과 형수님의 사랑은 그 모든 굽은 삶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형님 곁에 있다면 그저 힘내시라는 말 한마디를 전해드리고 싶지만, 사실 그런 말로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형님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랑을 계속 이어가고 계신 형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형수님이 항상 그 소나무 아래에서 형님을 기다리며 함께하고 계신다는 걸, 형님은 늘 느끼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그 사랑을 가슴속에 품고, 앞으로도 그분과 함께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형님의 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형님을 본받아 살아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힘내시고, 언제나 그 사랑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타향에서 동생 올림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