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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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진영호
안봉근
뻗어내리는 산줄기가 경안천을 보고 멈추는 곳. 오른쪽에 무갑산 능선이 길게 내려오고, 멀리 운길산이 보이는 양지바른 자리에 부모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진영호는 그곳에 부모님을 모셨다. 젊은 시절엔 농사를 짓다가, 토목공사에 뛰어들어 철근 작업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고향 후배들을 불러들여 삶의 터전을 일구고, 묘소에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앓던 병이 그의 6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발병했다. 몸이 쇠약해졌지만, 영호는 묘소를 가꾸면서 부모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 묘소의 잡초를 뽑고 정리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힘겨웠지만, 그에게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그런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웠다. 친구와 함께 묘소에서 냉면과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었다.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는 중에 영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이후, 친구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섯, 여섯 명이 함께 모이게 되었고, 그중에는 신장 투석을 받으러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 후배도 있었다. 그렇게 묘소는 점차 작고 소박한 경로당이 되어갔다.
친구들은 매일 같이 모여 묘소에서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마을 회관 정자에서 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멀리서 중학교 동창이 찾아온 적도 있었다. 50년 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몸이 아프고 힘든 상황에 친구 한 명 찾아오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한 일들이었다.
영호는 그렇게 작은 기쁨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평온했고, 친구들이 곁에 있어 더없이 든든했다. 오늘도 영호는 일찍 성남에서 출발하여 부모님 묘소에 들러 친구들과 점심을 나눴다. 점심 후 마을 회관 정자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즐기다 보면 내일이 병원에 가는 날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 영호에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몸이 많이 아프냐"라고. 어쩌면 그 아픔이, 그의 인생에서 말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은 영호의 아픔보다 그의 미소를 바라보았고, 그가 나누는 작은 대화와 일상을 소중히 여겼다.
암 투병으로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와중에도, 매일 부모님 묘소를 정성껏 손질하며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 영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묘소 주변의 푸르른 산줄기처럼 소박하지만 굳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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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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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 작가의 글은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애잔하게 그려낸다. 작가가 그려낸 인물, 진영호는 질병이라는 현실과 투병하면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에게 삶이란 더 이상 거창한 목표나 계획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는 것에 가깝다. 그런 영호의 하루는 그의 부모님 묘소를 가꾸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 평범함 속에는 영호가 지닌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과, 그를 둘러싼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섬세하게 녹아 있다.
작가는 산줄기가 경안천을 향해 뻗어 나가고, 무갑산과 운길산이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영호의 부모님 묘소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는 단순한 공간적 배경에 그치지 않고 영호의 마음이 머무는, 그리고 그의 삶이 가장 빛나는 곳으로 묘사된다. 영호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영면을 지키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묘소를 정성껏 돌본다. 이는 그의 삶이 어떻게 자연의 흐름과 어우러져 있는지,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영호는 젊은 시절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토목공사 현장에 뛰어들어 고된 철근 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속에서 고향 후배들과 함께 터전을 일구며 지내온 세월은 단순히 경제적 안정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그대로 드러낸다. 삶의 무게에 지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던 그는 부모님 묘소를 가꾸면서 인생의 희망을 다시금 발견한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묘소의 잡초를 뽑고 정리하는 행위는 마치 영호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정리하는 것과 같다. 그 과정을 통해 부모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감과 동시에 자신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는다.
친구들의 방문은 영호에게 큰 위안이 된다. 냉면과 짜장면을 나누며 대화를 하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그 순간들은 그의 얼굴에 생기를 되찾아준다. 그리고 그 묘소는 점차 작고 소박한 경로당처럼 변해간다. 한때 홀로 병마와 싸우며 고독했던 영호의 일상에 친구들이 찾아오고,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그의 삶은 조금씩 빛을 되찾아간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놓치고 마는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기쁨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몸이 많이 아프냐"라고 묻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영호의 아픔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아픔이 아니라, 그 아픔을 넘어 함께 웃고 즐기는 그 순간일 것이다. 영호 역시 자신의 병과 고통을 말하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에 몰입한다. 이는 삶의 고통을 넘어선 인간관계의 위로와, 소박한 일상의 평화로움이 영호의 삶에 어떻게 힘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은 단순한 암 투병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한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현실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이야기다. 비록 병마와 싸우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그를 잠식하려 하지만, 영호는 이를 애써 견뎌내며 일상의 소중함을 놓지 않는다. 묘소 주변에 뻗어 있는 산줄기처럼, 그의 삶은 소박하지만 굳건하며 자연스레 흐른다. 그가 묘소를 가꾸고,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일상은 마치 그 산줄기가 경안천을 바라보며 한 곳에 멈추어 선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롭다.
안봉근 작가는 이 글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모습을 애잔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삶의 끝을 향해 가는 와중에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며 묘소 주변의 푸르른 산줄기처럼 묵묵히 버텨가는 영호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할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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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 작가님의 글을 읽은
독자가 진영호, K, 그리고 안봉근 세 분의 눈물겨운 우정을 떠올리며
보내온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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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우연히 진영호 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독자입니다. 세 분의 이야기는 제 마음 깊은 곳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를 잊지 않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친구를 찾아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모습은 그 자체로 눈부신 우정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안봉근 작가님께서 진영호 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이런 깊이 있는 우정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가님은 그저 한 사람의 투병기만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오랜 우정과 인생의 따뜻함을 함께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K 님의 용기 있는 행동은 감동이었습니다. 50년 만에 만나는 친구를 위해, 100리 길을 서슴없이 달려가 위로의 손을 건네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우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지쳐 서로의 안부조차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도,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듣게 되면 단번에 달려가 마주하고, 꼭 손을 잡아주며 응원할 수 있는 것. K 님은 그 일을 거침없이 해냈습니다. 진영호 님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고, 손을 꼭 잡고 건강을 기도해 주었다는 그 모습이 저에게는 마치 한겨울의 추위를 녹여주는 따뜻한 불빛처럼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영호 님의 이야기가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던 병마가 결국 그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지만, 그는 묵묵히 부모님 묘소를 가꾸며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의 아픔을 물어보지 않는 이유는 그 아픔을 이미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병과 싸우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지 모르고 그를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주고 함께 웃고 대화하는 그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친구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진영호 님의 아픔을 묵묵히 견디며 곁에서 위로해 주는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묘소를 가꾸는 영호 님의 손길과 자연스레 어우러져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바쁘고, 때로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영호 님의 이야기와 왕식 님의 행동은 우리가 잊고 있던 우정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우정의 힘, 그 힘이 서로의 삶에 빛을 비춰주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네며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마치 봄이 오는 길목에서 언 땅이 녹고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그 손잡은 한 번의 행동이 진영호 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 그리고 그것이 영호 님의 마음에 어떻게 닿았을지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삶은 때로 우리에게 크고 작은 시련을 주고, 그 시련 앞에서 우리는 홀로 버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손 내밀어 줄 친구가 있고, 아무 말 없이도 곁에 있어주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호 님의 곁에는 그런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더라도, 그 어떤 고통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찾아와 주는 그런 진정한 친구가 말입니다.
영호 님의 투병기를 듣고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되려 그를 찾아가 함께 울고 웃어준 K 님과,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준 안봉근 작가님께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를 생각하며 함께 걸어가는 이들의 우정을 보며, 저도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우정과 사랑이 바로 인생의 참된 가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영호 님이 병마를 이겨내고 더 많은 날들을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들의 우정이 앞으로도 변치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진심을 담아,
한 독자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