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준집 시인의 '늙어가는 나에게' 평론가 김왕식 평하다
천준집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2. 2024
■
늙어가는 나에게
시인 천준집
늙어간다는 것은 떠난다는 것이다
석양처럼 저문다는 뜻이다
살아오는 동안
서글픈 날이 몇 날이었던가
외로운 날은 또 몇 밤이었던가
살아야 했기에 눈물도, 고통도
참아야만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절반이 곡절(曲折)이었고
날카로운 칼날에 내 몸을 모로 눕혔습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친 것이 50년
누구를 미워한 세월이 50년
그것들을 뼈저리게 뉘우치며
이제 지나온 세월은 돌아보지 않으렵니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로 갈망한 세월이 반평생
지금 거울 앞에 비친
물기 없는 초라한 나를 탓하기보다
거울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꽃향기만 채워보렵니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매달고 살아가지만
평생, 힘들었지
누군가 이 말 한마디만 해준다면
그래, 이 말 한마디만 해준다면...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천준집 시인은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며, 살아온 세월의 아픔과 후회를 담담하게 표현하는 서정적인 시어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그의 시는 삶의 굴곡과 외로움을 고백하면서도, 거친 풍랑을 넘어 이제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찾아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늙어가는 나에게"라는 제목에서부터 그가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자아를 진지하게 마주하고, 이를 통해 내면의 성찰과 희망을 발견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늙어간다는 것은 떠난다는 것이다 / 석양처럼 저문다는 뜻이다" 늙어감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지 않고, 이별의 과정이자 자연스러운 소멸을 암시한다. 석양의 이미지는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며, 그 끝자락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사라짐의 쓸쓸함을 강조한다. 삶의 저녁을 맞이하는 작가의 겸허한 자세가 담겨 있다.
"살아오는 동안 / 서글픈 날이 몇 날이었던가 / 외로운 날은 또 몇 밤이었던가"
여기서 '서글픈 날', '외로운 밤'은 일생을 통틀어 지배했던 고통과 쓸쓸함을 대표한다. 이 수사는 반복과 의문 형식을 통해 고독의 심각성과 지속성을 부각한다. 그가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삶의 주요한 한 축을 이루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살아야 했기에 눈물도, 고통도 / 참아야만 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고통과 눈물을 삼켜야 했다는 고백은 작가의 삶이 얼마나 절박하고 고통스러웠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단순한 한탄이 아닌, 삶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살아가기 위해 억눌렀던 감정은 오히려 삶의 의지를 더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절반이 곡절(曲折)이었고 / 날카로운 칼날에 내 몸을 모로 눕혔습니다"
작가는 과거를 회상하며 삶의 굴곡을 '곡절'로 표현하고 있다. 이 '곡절'은 방향의 전환을 의미하며, 삶의 시련과 변화를 나타낸다. 날카로운 칼날에 몸을 눕혔다는 비유는 그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또 얼마나 절박하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강렬한 표현이다. 이로써 인생의 험난함과 그에 대처하는 강한 생존 의지를 보여준다.
"살기 위해 몸부림친 것이 50년 / 누구를 미워한 세월이 50년"
50년간의 삶은 생존과 증오의 반복이었다. 여기서 '살기 위해 몸부림친 것'과 '미워한 세월'이 대조적으로 묘사되며, 작가의 인생에서 생존의 투쟁과 인간관계의 갈등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삶에 대한 애착과 인간에 대한 반목은 작가가 수없이 경험했던 감정의 양면성을 나타낸다.
"그것들을 뼈저리게 뉘우치며 / 이제 지나온 세월은 돌아보지 않으렵니다"
미움과 후회로 점철된 세월을 뉘우치는 작가의 모습은, 그가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으려는 결심을 드러낸다.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태도로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의지는 그의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뉘우침의 감정은 단순한 후회가 아닌, 성숙한 깨달음의 상징이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십시오 / 그렇게 기도로 갈망한 세월이 반평생"
용기를 구하는 기도는 오랜 시간의 간절한 바람이다. 이 간구는 작가의 연약함과 동시에 새로운 삶을 향한 의지의 표현이다. "반평생"이라는 시간적 표현을 통해 용기의 필요성이 얼마나 절박하고 지속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거울 앞에 비친 / 물기 없는 초라한 나를 탓하기보다 / 거울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 꽃향기만 채워보렵니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모습과는 반대로, 보이지 않는 내면에 꽃향기를 채우려는 시인의 의지가 돋보인다. 외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의 풍요로움에 집중하는 태도는 늙어감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과,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의지로 연결된다. '꽃향기'라는 이미지는 시적 화자의 내면의 순수함과 희망을 상징한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매달고 살아가지만 / 평생, 힘들었지 / 누군가 이 말 한마디만 해준다면 / 그래, 이 말 한마디만 해준다면..."
시인의 마음속에 묵직한 돌덩이처럼 존재하는 고통은 그의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힘들었다는 한 마디의 위로를 바라는 모습에서, 작가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적인 따스함을 갈구하고 있다. 이 단순한 말 한마디는 삶의 고난과 고독을 치유할 수 있는 위로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시 전체적으로 감성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다. 고독과 슬픔, 미움과 후회가 시인의 인생 경험을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유발한다. 특히 석양, 칼날, 거울, 꽃향기와 같은 이미지는 시각적 효과뿐 아니라 시적 화자의 심리적 상태와 삶의 철학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천준집 시인은 고난 속에서도 자기 성찰과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낸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늙어감을 두려워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삶의 긍정적인 태도와 용기를 강조한다. 시의 유기적인 흐름은 과거의 아픔에서 현재의 성찰로, 다시 미래의 희망과 내면의 향기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시인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전달하고 있다.
"늙어가는 나에게"는 삶의 굴곡과 고통을 고백하면서도, 이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천준집 시인은 삶의 무게를 온전히 끌어안으며, 그것을 거울삼아 자신을 성찰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꽃피우고자 한다. 그가 표현하는 늙어감은 사라짐이 아닌, 더 깊고 풍요로운 내면의 삶을 의미한다. 이 시는 노년의 고독과 성찰을 통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힘을 지닌다.
■
천준집 시인께,
ㅡ
시인의 시를 접하며 문득,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아픔들이 고요히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면의 무게들이 당신의 시에 담긴 석양빛에 비쳐 한층 선명해졌습니다. 시인께서 담담히 풀어내신 삶의 곡절과 아픔, 그리고 그 위에 새롭게 피어난 내면의 꽃향기는 마치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스한 손길과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늙어가는 인생 속에 각자의 무거운 돌덩이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떨치고자 애쓰면서도, 결국은 다시 그 무게에 눌려 스스로를 탓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그 무거움 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에 꽃향기를 채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그 무게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평생, 힘들었지." 이토록 진솔하고 간절한 한 마디를, 시인의 삶에 가만히 전하고 싶습니다. 그 길고 험난했던 세월을 지나온 시인께 경의를 표하며, 그 걸음걸음이 얼마나 값지고 눈부셨는지, 그 노고를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곧 떠남일지라도, 그 떠남의 과정에 시인이 남긴 아름다운 흔적들은 남아 있는 이들의 가슴속에 향기로 남을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이, 기도가, 그리고 간절한 바람이 제게도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남은 날들에도 내면에 꽃을 피우고 향기를 가득 채워가시길 기원합니다. 그 향기가 당신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위로가 될 것입니다.
시인님의 걸음을 마음 깊이 응원하며.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