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관객모독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관객모독



청람









페터 한트케의 초기 희곡 '관객모독'은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연극으로, 1966년 초연 당시부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트케는 당시 정체된 독일 문단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며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관객모독'은 그의 혁신적인 문학적 출발점이자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시간, 장소, 행위의 통일성, 감정 이입과 카타르시스와 같은 전통적 연극 요소들을 과감히 뒤집고,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특히 마지막에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퍼붓는 욕설은 현대 사회의 위선과 허위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러한 파격적인 전개는 연극의 틀을 벗어나 현실과 무대를 하나로 엮으며 관객들에게 깊은 충격을 준다.

'관객모독'은 줄거리나 사건이 전혀 없는 독특한 형태의 희곡이다. 무대에는 배우 네 명이 등장하며, 그들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된다.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 사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연극과 현실의 구분도 사라진다. 배우들은 관객을 "여러분"이 아닌 "너희들"로 부르며 거친 언어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배우들의 말은 연극의 관습과 전통을 깨뜨리며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배우들은 "이것은 연극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현재의 순간, 단 한 번만 일어나는 경험을 강조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을 현실처럼 바라보는 대신, 연극 자체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한트케의 작품은 언어 그 자체를 실험하는 ‘언어극’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연극이 현실을 묘사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객모독'에서 그는 사건이나 상황을 묘사하지 않고, 언어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리듬감과 구조를 형성한다. 대사에는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비슷한 문장과 단어들의 반복으로 음악적 리듬과 같이 독특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극의 후반부에서 배우들은 욕설을 쏟아내며 관객들을 향해 직접적인 언어적 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설조차 단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에 불과하며, 배우들은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이 작품은 파격과 실험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트케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1977년 국내 초연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 무대에 올랐으며, 그 도발적이고 전위적인 내용은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관습과 안정된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향해 나아가는 한트케의 도전 정신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한트케의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거듭난 '관객모독'은 전통극의 형식을 뒤엎고, 사회와 예술의 통념을 비판함으로써 현대극에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도발, 파격, 실험이라는 표현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이 희곡은 연극의 가능성과 한계를 새롭게 규정하며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남았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돈키호테와 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