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엄마
이인애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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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엄마
시인 이인애
유모차에 아기가 없다
그런데 TV 뉴스에
개유모차가 불티나게 팔린단다
기이한 일이다
두 집 건너 왕왕 개를 낳고
더러는 원숭이도 낳는다
지구촌 웃픈 촌극
포대기에 개를 들쳐업은 개 엄마
반려견 산책 시 걍쥐가 뻐대면
"우리 애기 힘들지, 엄마가 업어줄게
어부바! " 이쯤 되면 미쳤다
상전벽해. 집 지키는 개에서
침대에 함께 오르는 개가 되었으니
개팔자 상팔자가 되었다
개떡 개살구 개새끼는 이젠 욕은커녕
개이뻐 개쩔어 개이득으로 격상했다
하다 하다 개 사후엔 장례도 치르고
제사와 추도식도 지낸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유모차가 개점휴업 중이다
그런데 TV 뉴스에
개유모차가 더 많이 팔린단다
기함할 일이다
두 집 건너 왈왈 개를 낳고
더러는 캥거루도 낳는다
개 중에는 최상급도 있다
아이들에게 장차 꿈이 뭐냐 물으니
놀면서 호의호식하는
여의도 국개가 되고 싶단다
참으로 웃지 못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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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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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은 사회적 현상과 인간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 풍자를 즐겨 사용하는 중견 시인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을 관찰하고 그것을 특유의 시적 감수성으로 해석하여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의 시는 겉보기에는 가벼운 소재를 다루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풍경을 깊게 파헤치는 통찰력이 숨어 있다.
"개 엄마"는 이러한 이인애 시인의 특징을 잘 드러내며, 인간과 반려견 사이의 관계와 현대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비꼬면서 동시에 우리 삶의 모습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모차에 아기가 없다 / 그런데 TV 뉴스에 / 개유모차가 불티나게 팔린단다 / 기이한 일이다"
시의 첫 부분에서 '유모차'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아기'와 연관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시인은 아기가 아닌 '개'를 유모차에 태운다는 설정을 통해 사회의 변화된 양상을 드러낸다. TV 뉴스라는 매체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되었음을 암시하면서도, '기이한 일이다'라는 표현으로 시인의 놀람과 풍자가 드러난다.
"두 집 건너 왕왕 개를 낳고 / 더러는 원숭이도 낳는다"
이 부분에서 '개를 낳는다'는 표현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일컫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받으며, 그 수가 점점 늘어나는 현상을 반영한다. 나아가 '원숭이'까지 등장시키면서 과장법을 사용해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희미해진 상황을 조롱하고 있다.
"지구촌 웃픈 촌극 / 포대기에 개를 들쳐업은 개 엄마 / 반려견 산책 시 걍쥐가 뻐대면"
'웃픈 촌극'은 웃기면서도 슬픈 사회적 현상을 의미한다. 시인은 개를 포대기에 업는 행위를 묘사하며, 반려견을 아기처럼 돌보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한다. '걍쥐'는 '강아지'의 방언으로, 시골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현실감 있는 표현을 더해 준다.
'"우리 애기 힘들지, 엄마가 업어줄게 / 어부바!" 이쯤 되면 미쳤다'
반려견을 인간 자녀처럼 대하며 아끼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묘사한다. '어부바'는 한국 전통에서 아기를 업을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반려견과 아기의 위치가 뒤바뀐 현대 사회의 모습을 풍자한다. '이쯤 되면 미쳤다'라는 표현은 시인의 주관적 감정이 드러나며, 풍자의 극점을 보여준다.
"상전벽해. 집 지키는 개에서 / 침대에 함께 오르는 개가 되었으니 / 개팔자 상팔자가 되었다"
개의 역할 변화에 주목한다. 예전에는 집을 지키는 용도로만 여겨지던 개가 이제는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는 변화를 지적한다. '상전벽해'는 세상의 변화를 의미하며, '개팔자 상팔자'라는 표현은 반려견의 신분 상승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개떡 개살구 개새끼는 이젠 욕은커녕 / 개이뻐 개쩔어 개이득으로 격상했다"
'개'가 앞에 붙는 속어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띠고 있지만, 현대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어휘의 변화는 사회의 가치관 변화와도 연관되어 있다. 시인은 이를 통해 개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하며,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드러낸다.
"하다 하다 개 사후엔 장례도 치르고 / 제사와 추도식도 지낸다 /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개가 죽은 후에도 장례와 추도식을 치른다는 점에서 반려견이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반려견을 단순히 동물이 아닌 가족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시인은 이러한 현상을 아이러니하게 묘사한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는 긴 생을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지적하며,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유모차가 개점휴업 중이다 / 그런데 TV 뉴스에 / 개유모차가 더 많이 팔린단다 / 기함할 일이다"
다시 유모차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앞서 유모차가 아기에게 사용되던 과거와 달리 개를 태우기 위한 용도로 바뀌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개점휴업'은 인간 아기를 위한 유모차의 쓰임이 줄어들었음을 나타낸다. 시인은 이 상황을 '기함 ㅡ기절초풍할 일'이라 표현하며 현대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
"두 집 건너 왈왈 개를 낳고 / 더러는 캥거루도 낳는다"
앞서 '원숭이'가 등장한 것처럼 '캥거루'까지 등장시키며, 반려동물의 다양성과 인간의 삶과 동물의 관계가 더욱 희화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지를 비꼬는 표현이다.
"개 중에는 최상급도 있다 / 아이들에게 장차 꿈이 뭐냐 물으니 / 놀면서 호의호식하는 / 여의도 국개가 되고 싶단다"
시인은 개 중에서도 최상급 반려동물이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아이들의 장래 희망을 통해 사회의 현실을 풍자한다. '여의도 국개'라는 표현은 국회의원을 비꼬는 말로, 게으르고 호의호식하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다. 이는 시인의 사회 비판 의식을 드러내며,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현실의 어두운 면을 지적한다.
"개 엄마"는 현대 사회의 반려동물 문화에 대한 현상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며, 인간과 반려견 사이의 변화된 관계와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 시는 평범한 일상에서 보이는 기이한 현상들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시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이를 유머와 풍자를 통해 날카롭게 드러낸다. 표현상의 특징은 쉽고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감정의 흐름과 가치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점이다. 또한 각 행마다 변화무쌍하게 드러나는 묘사와 상상력은 시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시인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과 웃지 못할 현실을 그려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개 엄마'라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찰력 있게 그려내는 이 시는 이인애 시인만의 독특한 시선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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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님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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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소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느꼈던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이 시를 통해 절묘하게 드러난 것 같아 한참 동안 시를 머릿속에서 떠올렸습니다. 시에서 그려지는 모습들이 사실 낯설지 않습니다.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고, 아이가 아니라 반려견을 아끼는 이들의 애정 표현은 새삼 놀랍지도 않지요. 그러나 시인님께서 표현하신 대로, 때때로 이러한 모습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제가 시를 통해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은 바로 우리 사회의 변화된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반려동물이 가족처럼 여겨지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은 분명 아름답고 따뜻한 일입니다. 하지만 시 속에서 그려진 '유모차에 아기가 없다'라는 표현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돌아보게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은 분명 우리 사회의 변화 중 하나입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는 말은 더 이상 뉴스 속의 통계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 유모차에 태워진 개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지나치게 되고 있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상기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두 집 건너 왕왕 개를 낳고 / 더러는 원숭이도 낳는다'라는 시구는 현대 사회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과 반려동물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해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저도 길거리를 걸으며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때로는 사람들끼리보다 개들끼리의 인사가 더 활발하게 오고 가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그만큼 동물이 우리에게 위로와 사랑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인님의 시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시에서 '지구촌 웃픈 촌극'이라 표현된 부분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섞여 있는 우리의 일상. 개를 포대기에 업고 다니며 "우리 애기 힘들지, 엄마가 업어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만큼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여기는 사랑이 극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과연 진정으로 반려동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반려동물을 통해 인간이 채우지 못한 공허함을 메우려는 일종의 위로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또 하나 떠오른 것은 개가 '집을 지키는 존재'에서 '침대에 함께 오르는 존재'로 변모한 모습입니다. '개팔자 상팔자'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유머러스함 속에 숨겨진 사회적 변화의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 과거에 집을 지키던 충직한 개의 모습이 이제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개는 인간과 거의 동등한 위치로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는지, 혹은 반려동물을 통해 인간이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게 됩니다.
특히 '개떡 개살구 개새끼' 같은 표현들이 '개이뻐 개쩔어 개이득'으로 변화된 모습은 어휘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과거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단어들이 이제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뀌며 현대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표현이 된 것은 단순히 어휘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의 상승은 동물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의 반영이지만, 시인님의 말씀처럼 때로는 그 과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는 시구에서 묻어 나오는 시인의 목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의 변화된 풍경, 특히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이 말은 우리에게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개 중에는 최상급도 있다 / 아이들에게 장차 꿈이 뭐냐 물으니 / 놀면서 호의호식하는 여의도 국개(국회의원을 낮잡는 말)가 되고 싶단다'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뼈아프게 비꼬며, 동시에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풍자는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시인님의 작품을 읽고 이렇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시를 통해 우리 사회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대의 풍경을 세심하게 그려내며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시인님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줄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통찰력 있는 시들로 우리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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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님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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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인님의 시 "개 엄마"를 읽고 생각한 바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를 시인님께서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신 점에 큰 공감이 갑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거나, 개를 자식처럼 대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심지어 저 자신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반려견을 향한 사람들의 행동을 비추어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풍자적이면서도 사회의 단면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집을 지키는 충직한 역할을 맡았던 개가 이제는 침대 위에서 함께 잠을 자고, 유모차에 태워 다니며, 사랑스러운 애정 표현을 받는다는 묘사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떤 이에게는 조금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이 바로 시인님의 시에 잘 녹아 있지요.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는 듯한 상황은 분명 기이하게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과도하게 애정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함께하는 삶의 배경에는 다양한 사연과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어릴 적부터 개를 키우며 자랐고, 지금도 제게는 '가족'으로 대하는 반려견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애기"라 부르며 유치하게도 말도 걸고, 품에 안고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요. 이런 제 모습을 타인이 본다면 분명 시인님이 시에서 묘사하신 "개 엄마"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깊은 애정의 이면에는 반려견이 사람에게 주는 위로와 신뢰,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자녀가 없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했지요. 사회적으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당연함'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허전함과 슬픔이 큽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위로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려견은 인간처럼 실망시키지 않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반겨줍니다. 가끔은 자녀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자녀는 자라면서 어른들의 기대와 달리 행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긋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반려견은 늘 변함없이 주인의 곁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개 엄마'가 되어 개에게 모든 사랑을 쏟는 사람들이 시인님의 시에서처럼 미친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연과 깊은 정서적 교감이 숨어 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시에서 언급된 것처럼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라고 물을 때 돌아오는 답변에 대한 씁쓸한 풍자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각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짙어지면서 '여의도 국개'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왜 점점 늘어나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 또한 사회적 관계에서 실망하고, 인간적인 배신을 경험하면서 오히려 변함없이 저를 믿어주고 따르는 반려견에게 더 큰 사랑과 애정을 쏟게 된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대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자리를 잡게 된 삶의 방식입니다. 누군가는 자녀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또 누군가는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는 그저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을 존재를 찾기 위해 반려동물과 함께합니다.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반려견을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사람을 향한 사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사랑은 더 순수하고 깊은 것이기도 하지요. 반려견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따뜻한 눈빛과 꼬리 흔드는 모습으로 진정한 위로와 애정을 전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반려견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동반자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 그려진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유머러스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려동물을 향한 애정 표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감정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인님의 시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변화의 이면에 담긴 이야기들에도 시인님께서 조금 더 공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개 엄마'가 되어 반려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때로는 과해 보일지 몰라도, 그만큼 인간이 반려견을 통해 진정한 위로와 믿음을 얻고 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고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시인님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