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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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안봉근
작은 마을에 서 있는 나의 집에는 한때 제비들이 머물렀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떠들썩하게 지저귀던 제비들. 그들의 날갯짓 소리와 아침을 깨우는 울음소리는 집안 구석구석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겨울 내내 조용했던 집이 봄만 되면 그야말로 깨어난 듯했다. 제비들이 집을 찾을 때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제비들은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집안은 갑작스레 조용해졌고, 제비들의 둥지는 텅 빈 채로 남았다. 돌아와 주길 기다렸지만, 그들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익숙하던 제비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집은 한층 더 허전해졌다. 제비들은 떠나갔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빈 둥지뿐이었다. 집 앞마당을 걸을 때마다 그 빈 둥지가 눈에 들어왔고, 제비들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제 나의 집은 한없이 고요하다. 제비들이 떠난 뒤로는 다른 새들도 찾아오지 않는다. 한때는 가족처럼 느껴졌던 제비들과의 시간은 그저 기억 속에 머물 뿐이다. 가끔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제비들의 날갯짓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미 먼 기억에 불과하다. 제비들이 떠나고 난 뒤에도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지만, 그들의 흔적은 희미해져 간다. 집이 채워졌던 소리와 움직임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사라져 갔고, 그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마당에 나가면 그곳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봄과 여름의 생기를 견뎌낸 벼들이 익어가며 들판은 점점 노랗게 물들어 간다. 벼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노란색은 왠지 모르게 애처롭게 느껴진다. 햇볕 아래서 무럭무럭 자라던 벼들은 어느새 가을의 황금빛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은 눈부시지만 동시에 아픔을 담고 있다. 벼들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려는 듯한 몸짓은 마치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집 앞에 놓인 낡은 의자 하나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그대로 있다. 그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과거가 떠오른다. 제비들이 하늘을 날며 춤추듯 즐기던 날들, 그 아래서 햇볕을 쬐며 느꼈던 포근함. 그러나 지금의 의자는 먼지만 쌓인 채 쓸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의자는 어쩌면 제비들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제비들이 떠나고 집이 비워졌지만, 나는 지금의 이 조용한 시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빈집은 비었기에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그 안에 남겨진 기억과 흔적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질지라도, 그 빈자리 속에서 언젠가는 또 다른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빈 둥지에 다시 제비가 찾아올 일은 없을지라도, 그들의 흔적과 함께 새로운 계절을 기다려 본다.
오늘도 빈집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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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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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 작가의 작품 ‘빈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잔잔한 그리움을 담은 글이다. 작가는 빈집과 들판을 통해 삶의 무상함,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빈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상징성이 돋보이며, 그 속에 담긴 비어 있음의 미학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의 시작에서 제비가 떠나버린 빈집을 묘사한다. ‘아침, 봄부터 지저귀던 제비는 인사도 없이 떠나 빈집이다’라는 첫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제비의 떠남으로 인해 발생한 공허함과 고요를 한눈에 느끼게 한다. 제비는 생명과 활기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그들의 부재는 집의 주인이 떠난 뒤의 쓸쓸함과 겹쳐지며 더욱 비극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빈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함께 살았던 이의 추억과 시간이 스며든 공간이기에, 제비가 떠나면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독자에게 한층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지는 들판의 묘사는 이 글의 또 다른 핵심 요소이다. 작가는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들판을, 여름을 견뎌낸 벼들이 자라나는 곳으로 묘사한다. 벼는 무더운 여름을 견디며 황금빛으로 익어가지만, 그 모습은 한편으로 생명력을 잃어가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벼들의 모습을 ‘살려달라고 노란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벼의 성장과 생존의 애절한 몸부림은 단순히 농작물의 성장이 아닌, 인간의 삶과 자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고단함을 은유한다. 마치 벼들이 울부짖는 것처럼, 그들의 색은 눈부신 황금빛이 아니라 절망에 가까운 노란 눈물로 다가온다. 이 묘사는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면서 겪는 생의 고통과 희망을 암시한다.
빈 의자의 묘사 또한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를 한층 더 쓸쓸하게 만든다. '땡감 앞 빈 의자는 제 구실을 못하고 먼지만 가득하다'라는 표현은 의자의 기능이 상실된 채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그린다. 한때 사람들의 체온을 머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의자는 이제 먼지로 뒤덮여 쓸쓸한 상징으로 남는다. 의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빈집’은 단순한 공간적 의미를 넘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흐름과 무상함을 담고 있다. 작가는 빈집의 모습이 과거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라도, 지금의 상태라도 지속되길 바란다고 소망한다. 이는 비어 있기에 오히려 가득 채워질 가능성이 있는 공간에 대한 믿음이며, 현재의 모습 그대로라도 잃지 않고 지켜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드러낸다. 빈집이 가진 시간의 흔적과 사라진 생명의 기억은 비록 고요하지만, 그 고요 속에는 새로운 생명과 희망에 대한 기다림이 숨어 있다.
안봉근 작가의 ‘빈집’은 그리움과 기다림, 사라짐과 남겨짐의 이야기로 삶의 쓸쓸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와 서정적인 묘사로 가득 찬 이 글은 우리에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깊은 애착과 함께, 그 빈자리 속에 깃든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게 한다. 빈집이 가진 의미는 고요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으며, 그것은 언젠가 채워질 희망의 공간으로 남아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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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 작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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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작가님의 작품을 접한 독자입니다. 저는 이 편지를 통해 작가님의 글에 대한 감상과 감동을 전하고자 합니다. 특히 ‘빈집’이라는 작품을 읽고 느낀 깊은 여운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빈집’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마치 시처럼 다가왔습니다. 글의 짧고 간결한 문장들은 오히려 그 안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 속에서 전해지는 깊은 정서와 사색의 여운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비가 떠나버린 빈집과, 무더운 여름을 견뎌내며 노란 눈물로 익어가는 벼, 먼지에 덮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의자의 모습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닌 삶의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작가님께서 그리신 풍경 속에서 독자로서 저는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깊은 정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빈집의 쓸쓸함과 고요함은 삶에서 우리가 종종 마주하는 무상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비가 떠나며 생겨난 빈 공간과 그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되새기게 합니다. 작가님께서 빈집을 통해 그려내신 기다림과 소망의 감정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진 보편적인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떠나간 것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그것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희망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비어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작가님의 글을 통해 이런 감정을 새롭게 발견하고,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가님의 글은 그 자체로 마치 하나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들판’, ‘노란 눈물로 호소하는 벼’, ‘땡감 앞에 놓인 빈 의자’와 같은 표현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 공간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합니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진 이 풍경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연결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감정들은 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 작품이 가진 따뜻한 소망의 메시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빈집이 되고, 제비도 떠나갔으며, 벼들은 노란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작가님은 그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과거의 활기를 되찾을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조용한 모습이라도 지속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빈집의 고요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으며, 그 침묵 속에는 희망과 기다림이 숨어 있습니다. 이 소망은 단순히 빈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빈집을 가지고 있고, 그 빈집 속에 새로운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그런 면에서 ‘빈집’은 저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글을 통해 느낀 이 감정을 다른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작가님께서 그려내신 그 고요한 풍경,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기다림의 마음은 우리에게 삶의 다양한 면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 떠나간 것들이 남긴 흔적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놓치고 마는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이런 잔잔한 감동과 깊은 여운을 전해주길 기대하며, 계속해서 좋은 글을 써 주시길 바랍니다. 작가님의 글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사색의 기회를 주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선물을 받아 안으며, 오늘의 이 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멋진 작품 활동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