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나?
고은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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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나?
청람 김왕식
수년 전, 노벨문학상 후보에 고은 시인이 거론될 때마다 나는 큰 기대를 품었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무대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고은 시인은 한국 현대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시는 한반도의 역사적 격변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희망을 시적으로 풀어내며, 깊은 철학과 감성을 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때마다 한국 문학의 영광을 기대하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가 설렘과 기대감에 휩싸였다.
매년 수상자가 발표될 때면 낯선 외국 작가의 이름이 나오기 일쑤였고, 고은 시인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몇 차례는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수상의 영예를 차지한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이때마다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문학의 오랜 역사와 깊이를 생각하면, 고은 시인의 수상 실패는 단지 그의 탈락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문학이 그만큼 세계에서 주목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고은 시인의 미투 사건이 터졌다. 나는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충격과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문학적 성취를 쌓아 온 그가 이토록 불명예스러운 사건에 연루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의 시를 좋아했던 독자로서 그가 보여준 문학적 세계관에 깊이 공감해 왔기에, 이 사건은 나에게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문학적 거장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명예를 잃고, 결국 붓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가졌던 존경심이 무너지는 듯했다.
고은 시인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 문학의 대표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의 미투 사건은 문학계 전체에 큰 상처를 남겼고, 그가 쌓아 온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좌절된 것도 안타까웠지만, 그보다 더 큰 실망은
작가적 양심을 저버린 그의 비도덕적인 행위였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한국 문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토록 바라던 한국 문학의 세계적 인정이 더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실망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소식이었다. 한강 작가는 고은 시인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과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내면과 트라우마,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그려내 왔다.
사실 그녀는 몇 년 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수상으로 노벨문학상을 예고해 왔다.
그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이미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결국 그녀는 세계 문학계에서 인정받는 성과를 이룩해 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랜 시간 고은 시인의 탈락과 불명예로 인해 느꼈던 실망과 아쉬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한강 작가는 단순히 한국 문학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학가로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상처를 아름답고도 강렬하게 그려내며, 한국 문학이 가진 잠재력을 전 세계에 증명한 것이다.
한강의 작품은 단순한 개인적 서사를 넘어, 우리 사회와 시대가 안고 있는 트라우마와 고통을 직시하며, 이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그녀의 문체는 시적이고 실험적이며,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모순을 세밀하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 이는 단순히 문학적 장치의 차원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키는 정서적,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나는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 속에서 어떻게 더 큰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고은 시인의 실패로 인한 실망감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한강의 수상 소식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은 시인과는 또 다른 길을 걸으며, 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이토록 큰 인정을 받는 순간이 온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한국 문학 전체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K-문화를 통해 전 세계가 한국의 음악, 영화, 예술을 주목하고 있듯, 이제 한국 문학 역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한강의 수상은 단지 과거의 아쉬움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학이 세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심어준다. 이제 더 이상 한국 문학은 세계 문학의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며, 한강의 수상은 그 첫걸음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것이며, 그들은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세계 문학 속에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다.
나는 이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한국 문학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믿게 되었다. 그녀가 문학을 통해 보여준 인간의 고통과 회복,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하는 깊이는 단순히 한국 독자들에게만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다. 그녀의 수상은 한국 문학이 그동안 쌓아 온 문학적 성취를 세계가 인정하는 순간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제 나는 고은 시인의 실망스러운 과거를 뒤로하고, 한국 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다. 한강의 수상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앞으로 더 많은 작가들이 세계 문학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 문학은 더 이상 과거의 아쉬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 속에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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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의 존재와 그의 작품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실망이 교차하는 글을 읽으며,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 또한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순간을 간절히 기대했다.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을 넘어선 한국의 역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기에, 그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그의 미투 사건은 나에게도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 온 그가 개인적인 행위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실망감이 컸다. 고은 시인은 단지 한 사람의 작가가 아닌,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존재였기에 그의 행동은 문학계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가 쌓아온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을 통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그 실망을 어느 정도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은 시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체와 주제로 세계 문학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한강 작가는 인간의 내면과 트라우마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직시하는 용기 있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한강의 수상 소식이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고은 시인의 불명예로 인해 느꼈던 한국 문학에 대한 실망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고, 한강이 보여준 문학적 성취를 통해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 속에서 가지는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문체는 시적이고 실험적이며,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복잡성을 파고드는 깊이가 있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다.
이제 한강 작가의 수상을 기점으로,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기대하게 되었다. 고은 시인의 실망스러운 과거를 넘어, 한강을 통해 보인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바라보며, 한국 문학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그들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로 주목받을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단순히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한국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며, 더 많은 작가들이 그 길을 따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국 문학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