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희 시인의 '어머니를 씻기며'를 청람 평하다
유은희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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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씻기며
시인 유은희
구순의 어머니는 부쩍 밥알을 흘리고
기억을 흘리고 여자를 흘린다
몸의 괄호를 다 열어젖혀도
단춧구멍 열리듯 속이 훤히 열린다
이제는 그 흔한 비밀 하나도 간직하지 않는 여자다
목에서 다리까지 훌렁 벗겨져 내리는
이 뻔한 몸을 가지마다 벌목해 살아왔다
옹이마다 손 짚어 오르기만 했던 날들이 부끄러워져서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닌 여자로 만나
염을 하듯 어둠을 열어 닦는다
뼈마디 하나하나 닦아내고 문지르다 문득
저 삶으로의 이장인 듯 여겨져서
그만 비누 거품으로 눈 비비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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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ㆍ시인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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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희 시인은 일상적 소재를 시적 언어로 승화시키며 인간의 내면과 관계 속 깊이 감춰진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탁월하다.
그의 시에는 여성으로서의 삶, 노년과 죽음, 상실과 치유의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어머니를 씻기며'에서는 생애의 끝자락에 선 어머니를 돌보며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과, 한 인간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표현된다. 이러한 배경은 시인의 개인적 경험과 직결되어 있으며, 삶과 죽음을 동시에 응시하는 독특한 시각이 녹아 있다.
"구순의 어머니는 부쩍 밥알을 흘리고 / 기억을 흘리고 여자를 흘린다"
어머니의 구순이라는 설정은 시간의 무게를 강조한다. ‘밥알을 흘리고 기억을 흘린다’는 표현은 일상과 정신의 퇴행을 상징하며, 어머니가 더 이상 자아를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특히 ‘여자를 흘린다’는 구절은 어머니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슬픔을 함축한다. 이 행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돌봄 속에 느껴지는 자식의 혼란과 상실감까지 암시한다.
"몸의 괄호를 다 열어젖혀도 / 단춧구멍 열리듯 속이 훤히 열린다"
여기서 ‘괄호’는 몸의 경계를 상징하며,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신체적 주권이 허물어진 상태를 나타낸다. 어머니의 몸은 더 이상 은밀한 비밀을 지니지 않으며, 이는 인간이 생애 말기에 도달했을 때 맞닥뜨리는 무방비한 상태를 묘사한다. 표현의 간결함이 오히려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제는 그 흔한 비밀 하나도 간직하지 않는 여자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 도달했다. 일상과 관계 속에서 쌓아온 사소한 비밀마저 사라진 채, 인간의 본질적 허무함이 드러난다. 이 구절은 어머니가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역할도 유지하지 않음을 암시하며, 시인의 시선이 이를 연민과 애정으로 포착한다.
"목에서 다리까지 훌렁 벗겨져 내리는 / 이 뻔한 몸을 가지마다 벌목해 살아왔다"
‘목에서 다리까지 벗겨져 내리는’ 표현은 씻김의 과정과 더불어, 어머니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삶을 벌목하듯 살아온 어머니의 몸은 각종 상처와 흔적의 집합체이다. 이 구절은 어머니의 삶이 고난과 인내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암시하며, 생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옹이마다 손 짚어 오르기만 했던 날들이 부끄러워져서 /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닌 여자로 만나"
자식의 시선은 이제 어머니를 여성으로 재인식한다. 돌봄의 과정 속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과거의 ‘어머니’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여성이자 인간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역할 교환이 아닌, 어머니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화해의 순간으로 읽힌다.
"염을 하듯 어둠을 열어 닦는다"
‘염’은 죽음의식과 연결되며, 씻김 행위가 단순한 돌봄을 넘어 일종의 의례적 행위로 격상된다. 어둠을 닦는다는 표현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생애의 끝자락에서 남은 잔여들을 정화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이 순간, 시인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뼈마디 하나하나 닦아내고 문지르다 문득 / 저 삶으로의 이장인 듯 여겨져서"
씻김의 행위는 단순한 신체적 청소가 아닌,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을 상징하는 ‘이장’으로 확장된다. 이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면서, 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만 비누 거품으로 눈 비비고 만다"
비누 거품으로 눈을 비빈다는 구절은 육체적 피로와 감정적 혼란을 동시에 드러낸다. 돌봄의 과정 속에서 시인은 감정에 휩싸여 흐려진 시야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시의 절정이자, 인간적 한계의 순간을 상징한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세밀한 감정 묘사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어머니의 몸과 씻김의 행위는 단순한 돌봄을 넘어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시인은 사소한 행위 속에서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끌어내며, 평범한 일상을 초월적인 경험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감성적 측면은 독자로 돌봄과 상실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유은희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인간의 생애 말기와 돌봄의 순간을 정직하게 마주한다. 어머니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취약함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으로 해석된다. 시인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며, 돌봄이 단순한 의무가 아닌 이해와 화해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삶의 마지막까지도 남는 것은 결국 사랑과 연민이라는 사실이 시 전반에 녹아 있다.
'어머니를 씻기며'는 일상의 평범한 행위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어머니를 씻기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깨달음은, 돌봄의 순간이 단순한 육체적 행위가 아닌 내면의 성찰과 치유의 과정임을 암시한다.
시인의 언어는 간결하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며,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이라는 복합적 주제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이 시는 독자에게 인간의 본질과 관계의 의미를 되묻는 깊이 있는 성찰을 선사하며, 유은희 시인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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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희 시인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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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시인님,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시인님의 작품 '어머니를 씻기며'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시인의 시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행위처럼 보이는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 속에서 그려진 깊은 사랑과 상실의 순간들이 너무도 사실적이고 아름다워서 한동안 시를 놓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를 읽으며 돌봄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시 속에서 묘사된 어머니의 구순의 모습은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무게를 흘려보내는 노년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어머니를 한 인간이자 여자로 다시 마주하는 시인의 시선이 놀랍도록 섬세하게 다가왔습니다. '밥알을 흘리고, 기억을 흘리고, 여자를 흘린다'는 구절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이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까지도 잃어가며 새로운 시간 속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담담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제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이 떠올랐고, 언젠가 마주할 시간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몸의 괄호를 열어젖히고, 단춧구멍 열리듯 속이 훤히 열린다'는 표현은 저에게 강렬하게 와닿았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신체적 노화를 넘어 생의 마지막에서 경험하게 되는 무방비한 상태와 인간적 허무함을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주셨습니다. 시인이 어머니를 여자로 다시 만난다는 구절에서는 돌봄 속에서 새로운 이해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관계를 정리하고 이해하는 일종의 정화의 과정임을 시인님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시의 마지막에서 비누 거품으로 눈을 비비는 장면은 저에게 감정의 절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며 느끼는 피로와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연민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육체적인 돌봄의 피로가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돌보면서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여정을 상징한다고 느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의 층위를 탁월하게 그려내셨고, 그 진솔함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시를 읽으며 저 역시 언젠가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게 될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결국에는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생애를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 인생의 순리일 것입니다. 그 시간이 찾아왔을 때, 시인의 시가 제게 큰 위안과 지침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시를 통해 삶의 마지막에 담긴 고통과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시인님께서 그러하셨듯, 저 또한 돌봄의 순간이 단순한 육체적 노동이 아닌 이해와 사랑의 과정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삶의 본질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님께서 쓰신 시어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마치 따스한 손길처럼 다가와 제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읽고 나서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사랑을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신 시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머니를 씻기며'는 단순한 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록입니다. 시인이 이러한 주제를 이렇게도 담담하고 진솔하게 풀어내어 주신 것에 경외심을 느낍니다. 시의 언어가 이렇게 마음을 울리고,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경험을 저도 처음 해보는 듯합니다.
시인님께서 앞으로도 이러한 깊은 통찰과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시를 계속 써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시인님의 작품들을 더 찾아 읽으며, 시를 통해 배운 깨달음을 제 삶 속에 녹여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직접 시인님의 강연이나 낭송회에서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 어린 감동을 전해주신 시인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시인님의 시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주는 등불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