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07. 2024
'늙지 말고 익어가자' ㅡ 시인ㆍ수필가 홍승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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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말고 익어가자
시인ㆍ수필가 홍승표
가끔 파주에 갑니다.
파주에서 2년 간 살았는데 그때
인연을 맺은 몇 사람이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지요.
함께 일했던 전직 공무원과 지역신문 대표,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 몇이 모임을 가집니다.
돌아가면서 점심을 주관해 함께 먹고 카페로 옮겨 차담(茶談)을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신변잡담을 나누는 것이지요.
한 여름 햇살이 따가운 날, 연천의 산속엘 찾아들었습니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산자락에 자리 잡고 오리장작구이를 하는 식당이었지요.
"이런 산골에 식당이 있다니?" 의구심도 잠시,
나뭇가지를 휘청거리게 하는 사람들의 두런대는 소리가 새소리보다 요란한 나름 알려진 식당이었습니다.
늙지 말고 익어가자!'
어라? 이런 산속 식당 건물에 이런 글귀가! 식당 건물에 쓰여 있는 글이 눈에 들어왔지요.
노랫말로 듣기는 했지만 낯선 곳에서 만나니 반가웠고 정말 잘 익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공짜전철을 타는 나이가 되었지요.
이 정도 살았으면 오랜 세월이 우려낸 깊은 향기와 넉넉한 사람냄새가 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허송세월을 보내는 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이지요. 한가위가 지나고 절정을 향해 가는 가을처럼 무르익어 가야겠지요.
남은 생이라도 깊은 생각과 낮은 몸짓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리 된다고 단정할 순 없는 일입니다.
점심식사 후, 숭의전 인근 카페에 들렀는데 크고 넓은 책꽂이에 수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었지요.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파주 출판단지 '지혜의 숲' 말고는 그렇게
많은 책이 진열된 곳은 처음 보았습니다.
서점처럼 분야별로 나뉘어 진열되지 않아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천천히 느긋하게 돌아보았지요.
정리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의 책들 속에서 보물 찾기처럼 두리번거리다 두보(杜甫)와 쌍벽을 이루는 중국의 시성(詩聖) 이백( 李白)의 책, 시선집을 만났습니다.
자리에 돌아와 차를 마시며 신선의 노래 같은 시를 읽다 보니 한 구절이 가슴을 열고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연못에 가득한 꽃들 따뜻한 봄별에 빛나고 / 창 앞 대나무는 밤에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 옛날과 오늘이 하나로 끝없이 이어지니 / 길게 노래하며 옛 놀던 일 생각하노라!'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라고 살다 보면 나이가 들고 늙어 가는 게 당연한 세상 이치이지요. 나이 먹은 게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나이 많다고 내가 옳고 내 고집만 앞세우면 그저 나이 먹은 늙은이 취급을 받게 되지요. 살면서 쌓은
인생 경륜을 아랫사람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게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고 어른 대접받는 길이지요. 어려운 이웃을 돕고 봉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게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길입니다.
늙은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어르신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참 인생이지요.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인생의 가을이 아직도 철들지 못하고 설익었다는 아쉬움 속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지나면서 이제라도 농익은 과일처럼 익어 가면 좋겠지요. 익지 않은 과일은 먹을 수 없듯이 사람도 덜 익으면 제 구실을 못합니다.
마을 어귀 큰 고목은 하루아침에 자라난 게 아니지요.
백 년의 세월, 비바람 눈보라 치고 무더위와 혹한을 견뎌낸 소중한 결정체입니다.
인생의 경험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이고 단순한 이론이나 가르침과는 차원이 다른 참 인생의
보물이지요.
젊은이는 앞만 보고 빨리 달리지만 경험이 많은 어른은 지름길을 알고 간다"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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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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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작가의 수필 "늙지 말고 익어가자"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인생을 ‘익어가는 노정’으로 바라보며 성숙을 권하는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다. 글은 작가가 파주에서 맺은 인연과 일상의 소소한 만남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이 나이 들어감이 아닌 ‘익어감’이어야 한다는 사유로 이어진다. 파주에서 만난 옛 친구들과 산속 식당에서의 대화, 그리고 이백의 시 한 구절을 통해 그는 삶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늙지 말고 익어가자"라는 문구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을 때, 작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단순히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글에는 그 다짐이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로 깊숙이 자리 잡은 모습이 드러난다.
작가는 "공짜 전철을 타는 나이"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경륜을 소중히 여기며, 그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월에 대한 깊은 고찰 속에서 그는 인생의 경험을 단순한 나이 듦이 아닌,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익어가는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젊음이 빠르게 앞만 보고 달린다면, 경험이 많은 어른은 지름길을 알고 갈 수 있음을 강조하며, 그 길이 바로 인생의 진정한 성숙임을 깨닫게 한다.
작가가 이백의 시를 읽으며 느낀 감동은 그의 인생 철학과도 연결된다. 자연 속에서의 한 구절을 통해 삶의 유한성과 동시에 그 속에서 얻는 경험과 지혜를 경외하며, 그것을 후배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자 다짐한다.
이렇게 깊은 성찰이 묻어나는 글 속에는 그가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 삶을 무르익게 만드는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렇듯 작가의 글은 단순히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언을 넘어,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요컨대, 홍승표 작가의 글은 단순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더욱 성숙하고 넉넉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권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가 일생을 공직자로 봉사하며 쌓은 인생의 경륜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성숙한 인생으로 익어가는 과정을 독자에게 감동적으로 전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지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는 모든 이들에게 삶을 농익게 하는 참된 길을 제시하는 이 글은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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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길, 인연을 따라가며
고즈넉한 산길, 오리장작 향에 묻혀
늙지 말고 익어가자,
산속 식당에 새겨진 글귀에
내 마음이 덩달아 물들어간다
공짜 전철을 타는 나이,
깊은 향기와 따뜻한 사람의 냄새,
아직 다 채우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
가을처럼 무르익고 싶어라
차 한 잔 곁에 시집을 펼치면
이백의 구절 속 봄과 가을의 노래,
세월을 지나온 날들이 가슴에 스며든다
늙어가는 길이 아닌,
무르익는 삶을 꿈꾸며
그저 나이 든 늙은이가 아닌
참된 어른이 되기를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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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작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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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존경심과 감사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공직에 계시던 시절부터 청렴한 자세로 변함없는 헌신을 다하셨던 모습은 지금도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공직사회에서 늘 가장 존경받는 분이셨고, 높은 자리에서도 절대 초심을 잃지 않으셨기에, 그 세월이 단순히 지나온 시간 이상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늙지 말고 익어가자"라는 글귀에서 느껴지는 작가님의 생각과 마음이 특별히 다가왔습니다. 그 문장에서 작가님의 평생 철학과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속에서 그냥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가을을 맞으며 진정으로 익어가겠다는 다짐을 전해 들으니, 저 역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글 속에서 이백의 시 한 구절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겸손함이 작가님 다운 모습이라, 더욱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삶의 지혜와 경륜을 아랫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하시며, 세월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 마음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늙어가는 게 아닌 익어가는 것’이 참 어른의 길임을 몸소 보여 주셨기에, 저희 후배들도 닮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공직을 떠난 후에도 꾸준히 이웃을 돌보시고,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시는 모습에서 작가님이 걸어가신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인생의 무게와 깊이를 이토록 따뜻하고 진실하게 전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그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작가님의 글처럼 저도 "익어가는 삶"을 꿈꾸며, 작가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 천천히, 그러나 진정성 있게 걸어가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이렇게 멋진 글로 많은 이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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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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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평생을 공직자로 살았고, 탁월한 일처리는 물론 양보하고 배려하는 인성으로 경기도청 공무원들이 선정하는 <존경하는 베스트 간부공무원>으로 4회 연속 선정되었고 공무원으론 최고영예인
<다산 청렴봉사 대상>, <경기도를 빛낸 영웅>, <홍조근정훈장>을 받는 등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경기도청 비서실에서 7명의 도지사를 보필했고, 인사행정전문가로 2년 6개월 간 전국지방공무원을 대표해 '공무원 직종 개편위원'으로 활약했다.
이 공로로 '전국광역자치단체공무원 노동조합연맹'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으며 최 말단 9급 서기보로 공직을 시작해 1급 관리관으로 명예퇴직한 공직사회 레전드로 손꼽힌다.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일하면서 만성적자였던 공사경영수지를 3년 연속 흑자기관으로 바꿔 <대한민국 문화관광산업 대전 관광부문 대상>, <코리아 혁신대상>을 받았다.
따뜻한 심성으로 이웃 돕기에도 정성을 보여 어린이 재단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대한적십자사 회원유공장 금장>을 받았다.
198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문인으로 수필집 '꽃길에 서다'가 <세종도서>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한국 문인협회 회원으로 언론 기고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기부의장, 경기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부회장, 대한민국 국제관광 박람회 조직위원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