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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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시인 곽해란
나무의 문을 두드리면
나무는 문을 열고
들어오라 내 손을 잡아끌지
나무는 할 말 많은
내 사정은 뒤로 하고
제 이야기에 열을 올리지
이따금 다른 나무 흉도 보면서
초저녁 별 한 잎 띄운 차 한 잔 권하네
사방은 온통 초록세상
더러는 연두색과 갈색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돈도 명예도
어디에 소용될 곳 없는 나무들의 터에서
우리는 연록빛 우러난 차 후후 불어 마시면서
오래 마주 보고 있었네
때로는 계곡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길을 묻는 바람에게 대꾸도 해 주면서
나는 나무에게 나무는 나에게
그냥 오래 입어 늘어난 옷 같은 사이
별로 바라는 것도 없이
단단한 껍질을 가진 나무에게는 문이 있다네
그 문 안에는 동그란 식탁과 동그란 찻잔
동그란 사이가 있다네
우린 지금 동글동글
열매를 키우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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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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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해란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세속적 가치나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사유를 통해 참된 성숙의 길을 걸어간다. 곽 시인의 이러한 철학적 자세는 시 '나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도시의 삭막함을 떠나 자연의 포근함으로 초대하는 '나무' 속에서 우리는 삶의 쉼표를 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첫 구절 “나무의 문을 두드리면”은 독자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마음가짐을 요구한다. 이는 나무가 단순한 물체가 아닌,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다가오는 시작점이다. 나무는 “문을 열고 들어오라” 하며 따뜻하게 맞이하는데, 이는 곽 시인이 자연 속에서 발견한 안식과도 같다. '나무'는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는 모성적 사랑의 상징이다.
다음 행에서는 나무가 “제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세상과 인간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부심과 평온함을 전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는 마치 속세의 혼란 속에서 무게와 소음을 떨쳐낸 시인의 내적 평온을 상징한다. 나무가 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장면은 자아 성찰과 자기 탐구의 깊이를 보여준다.
“초저녁 별 한 잎 띄운 차 한 잔 권하네”라는 구절은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연 속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즐거움을 전달한다. 이는 곽 시인의 삶 속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차지하는데,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 내면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
시 속에서 “사방은 온통 초록세상”이라는 표현은 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위로를 담아낸다. 세속적 가치와 동떨어진 ‘초록세상’은 인간의 탐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또한, “연두색과 갈색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구절은 다양한 삶의 색채가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상징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우린 지금 동글동글 열매를 키우고 있다네”는 자연 속에서 인간과 나무가 함께 이루어가는 삶의 완성을 뜻한다. 이 구절에서 열매는 삶의 결실을 상징하며,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통해 성숙해 나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곽해란은 시를 통해 세속적 가치를 넘어서는 내면의 성숙과 행복을 강조하고 있다.
곽해란의 시 '나무'는 세속적 성공이나 물질적 가치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온과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성숙한 시각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도시의 회색빛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를 소망한다. 이 시에서 나무는 한없이 포근하고 넉넉한 모성의 상징이며, 마치 아무런 조건 없이 인간을 품어주는 자연의 품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나무의 문을 두드리면'이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자신을 돌아볼 것을 권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동그란 사이로 연결되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곽해란은 나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나무와 인간이 서로를 통해 성숙해 가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열매를 키워간다는 것은, 우리 삶의 결실이 외적인 성공이 아닌 내면의 깊이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를 전한다. 그의 시는 자아 탐구와 존재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길로서,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얻게 되는 평온과 안식을 그린다. 이는 결국, '나무'가 제공하는 따뜻한 차 한 잔처럼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는 힘이 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