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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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계엄령이 선포됐다.
청천에 벽력이었다.
온 국민
밤잠을 설쳤다.
곧
끝났다.
희대의 해프닝이었나!
■
계엄령
시인 이오장
"손들어
꼼짝 마라
움직이면 쏜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뒤돌아보니
아이들의 나무총 병정놀이
45년 전 계엄령을 어디서 배웠을까
얼마 전 상영된 서울의 봄을 봤나
이상하다
그 영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는데
시국이 불성실하다 보니
아이들이 먼저 나서는 세상
숙종 시절
미나리와 장다리 노래가 떠올라
가만히 읊조리며
귀갓길 서두르는데
"손들어
꼼짝 마라
움직이면 쏜다"
여의도에서 들려오는 고함
고개를 기우뚱 좌우뚱
한밤의 뉴스가 달을 가린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오장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시적 언어로 담아내는 데 탁월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독특한 시각으로 현실을 해석하며 깊은 성찰을 끌어낸다. '계엄령'은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교차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와 그 잔재를 재조명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계엄을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상황과 연결하여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시인은 감각적 이미지와 간결한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 "손들어 /
꼼짝 마라 /
움직이면 쏜다"
첫 행에서 반복되는 명령형 어조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조성한다. 이는 과거 계엄 상황에서 체험한 공포의 상징으로, 단순한 유희처럼 보이지만 시대적 폭력을 함축한다. 아이들의 놀이에 이러한 표현이 스며든 것은 계엄의 문화적 잔재와 집단적 기억의 영향력을 암시한다. 과거의 억압적 현실이 세대 간 무의식적으로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 뒤돌아보니 /
아이들의 나무총 병정놀이"
평범한 일상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목격하는 장면은 과거의 비극적 경험과 대조되며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나무총은 놀이의 도구지만, 시인의 시각에서는 억압의 상징으로 읽힌다. 과거의 폭력적 권위가 놀이 형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개인적, 사회적 트라우마의 지속성을 드러낸다.
"45년 전 계엄령을 어디서 배웠을까"
시간의 흐름을 상기시키며,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다. 과거의 계엄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문화적,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임을 암시한다. 이는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얼마 전 상영된 서울의 봄을 봤나 /
이상하다 /
그 영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는데"
사회적 규율과 아이들의 경험 사이의 모순을 지적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폭력과 억압을 학습했는지 묻는 구절은, 현대 미디어와 교육의 책임을 묻는 듯하다. 이는 사회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며, 시인은 독자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시국이 불성실하다 보니 /
아이들이 먼저 나서는 세상"
현실을 직설적으로 꼬집는 표현이다. 시국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부조리는 어린 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로써 시인은 현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이는 아이러니를 넘어 깊은 우려와 비판을 담고 있다.
"숙종 시절 /
미나리와 장다리 노래가 떠올라"
과거의 역사와 민속적 이미지를 소환하여 현대와 연결한다. 숙종 시절의 노래는 과거와 현재의 공명을 형성하며, 역사가 단절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는 전통 속에서 현대를 성찰하는 시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가만히 읊조리며 /
귀갓길 서두르는데"
시적 화자의 움직임은 독자에게 내적 불안을 전달한다. 이는 단순히 계엄의 공포뿐 아니라, 현재 사회의 긴장감과 불확실성을 표현한다.
"여의도에서 들려오는 고함 /
고개를 기우뚱 좌우뚱 /
한밤의 뉴스가 달을 가린다"
여의도와 뉴스는 현대 정치의 중심으로, 시국의 혼란을 상징한다. 달을 가리는 뉴스의 이미지는 불안과 암울함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시인은 정치적 현실의 어두운 면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이오장 시인의 '계엄령'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계엄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을 예리하게 조명한 작품이다. 시인의 철학은 억압과 부조리를 기록하고 반성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성 회복을 지향한다. 작품의 표현은 간결하지만 강렬하며,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다만, 특정 문장에서 맥락 전환이 다소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점이 있어 독자가 이해하는데 버거울 수 있다. 전반적으로, '계엄령'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며, 독자에게 현실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뛰어난 시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