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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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시인 문희 한연희
남이 그린 만다라 도안에 색칠을 하는데 어느 날인가 사회복지사가 직접 그려보는 건 어떠냐는 권유도 있었고 갤러리 '소' 인 선생님께서 색으로 마음을 표현해 보라는 말씀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해 볼 여유가 없었다.
잔뜩 쌓여있는 도화지를 볼 때마다 돈 주고 산거라 덥석 버리지도 못하겠고 마음만 상했더랬다.
며칠 동안 매일 색칠을 하다 보니 그 시간이 풀 뽑는 시간 못지않게 세상 좋았다.
색칠하는 동안 이명을 중화시켜야 하므로 이어폰으로 김동호목사님이나 김기석목사님 김학철목사님 등의 말씀도 듣고 지노박 선교사님의 찬양이나 책 읽어주는 J, 책한민국 등 들어도 좋을 유튜브는 바다의 물만큼이나 풍부하고 감미로운 영상이 지천이다.
뇌 MRI 촬영을 앞두어 심란했던 8/20(목) 일 아침, 막연히 도화지에 그림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며칠 전에 도화지를 센터에 갖다 놨다.
사전에 계획되거나 연상되는 형태 없이 선을 더할수록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색도 마찬가지로 칠해갈수록 이야기가 꾸며졌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속담처럼 값지고 좋은 원석이라도 정으로 쪼아서 불순물을 뺀 구슬을 쓸모에 적합하도록 꿰어 놓아야 본연의 값어치가 드러나는 게 아니겠는가.
오전에 마치지 못하고 병원에 갔다가 다음날 완성을 했다. 내가 고심 끝에 그린 의미 있는 선이라서 뇌리에 남는 게 느껴졌다.
백지를 펴놓았을 때의 막막함을 극복하고 그 위에 애를 쓰면서 원을 그렸다.
원을 한참 들여다보니 생명의 시작으로 잇대어졌다.
난자의 원, 세포의 원형, 한연희라는 유일무이한 생명을 이루고 있는 DNA, 나를 생명싸개로 감싸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늙어도 늙지 않으며 온갖 병에 노출되어도 도저히 침투하지 못하는 절대의 공간이 내 마음속에 있음이 느껴지자 커다란 희열과 함께 생명의 꿈틀댐이 종이 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췄다.
내가 처한 상황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처럼 어둠이 역동적으로 휘몰아칠지라도 나를 절대로 상하게 못하여 결국엔 영원으로 이어질 내용을 담았다.
나에게 영생의 복을 안겨주시고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죽기까지 희생하신 보혈의 은혜 아래 서 있는 나, 사방에서 나를 향해 기도와 간구로 눈물을 흘리는 조건 없는 사랑이 구름 떼처럼 몰려오고 있지 아니한가.
흰 도화지가 선과 색으로 가득 찼다.
바라볼수록 마음이 편하고 감사가 밀려오는데 눈물보가 터졌는지 아무 때나 쏟아졌다.
안팎 모두 강력하게 넘실대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쯤으로 여기고자 한다.
어떤 질병도 나를 해칠순 없다.
나다움의 고유한 성질은 주님의 보호 아래 여전히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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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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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단순한 만다라 색칠 경험을 넘어, 삶의 철학과 미의식을 아름답게 녹여낸 깊은 성찰의 기록이다. 작가는 일상의 작은 행위 속에서 창조적 고뇌와 영적 깨달음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를 새롭게 조망한다.
우선, 글은 만다라 색칠이라는 단순한 행위가 작가에게 있어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도구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도화지 위에 선을 그리고 색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에 비유하며, 인간의 잠재력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작가는 백지에서 시작해 생명의 원형과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 창조적 행위의 본질적 가치를 탐구한다.
작품 속에는 깊은 신앙적 철학이 깃들어 있다. 도화지 위의 원형이 생명의 시작을 상징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깨닫는 순간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작가의 삶이 신앙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글은 단순히 개인적 체험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 생명, 그리고 영원에 대한 사유를 함축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미의식 또한 섬세하다.
색과 선이 결합하며 도화지를 가득 채우는 과정은 작가의 내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행위로, 이는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영혼의 춤을 표현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생명의 꿈틀댐이 종이 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는 묘사는 글의 미학적 정점을 이루며, 생명의 활력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요컨대, 이 글은 단순한 일상적 경험을 통해 작가의 삶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예술적 미의식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만다라라는 작은 매개체가 작가에게는 자기 탐구와 영적 깨달음의 통로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작가의 철학적 통찰과 신앙적 사유, 그리고 미적 감수성이 어우러져 글은 독자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안겨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