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3. 2024
■
잠들지 못하는 시간
시인 이인애
질문과 회의가 도돌이표로 합주한다
꼬리가 꼬리를 물고 도는 날카로운 밤
양을 세다 놓치고 별이 술잔에 담겼다
삶의 길에 무상으로 주어진 유한한 시간
온 방 가득히 쉼 없이 파닥거리던 날개들
가녀린 몸짓을 비비며 촉수를 세운다
의지를 잃고 떨구던 회한의 눈물 눈물방울
지금은 어느 이름 모를 우주를 배회할까
크로노스*에 저당 잡힌 시간을 수습하자
용기와 지혜의 실타래를 곱게 직조하며
위기를 특별한 기회로 반전을 꿈꾸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다시 날개를 펼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을 둘로 나누었다
크로노스* 그냥 흘려버리는 시간
카이로스* 인생에서 주어지는 기회의 순간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인애 시인의 시 "잠들지 못하는 시간"은 깊은 철학적 사유와 미적 감각으로 시간을 둘러싼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가능성을 그려낸다.
시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한 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를 통해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의 허무함과 삶의 기회로서 시간의 의미를 대조적으로 조명한다.
이는 시인이 가진 삶의 가치 철학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며, 삶의 무상함 속에서도 희망과 가능성을 찾아 나가려는 의지를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첫 연에서 반복되는 질문과 회의는 인간의 불면의 시간, 즉 내면적 갈등의 순간을 상징한다. "도돌이표로 합주한다"는 표현은 이 고뇌가 끝없이 순환하는 특성을 강조하며, "양을 세다 놓치고 별이 술잔에 담겼다"는 이미지는 일상의 작은 행위 속에서도 발견되는 의식의 혼란과 찰나의 깨달음을 미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는 시인의 미의식이 단순한 언어를 넘어, 시간 속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포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둘째 연에서는 "유한한 시간"이라는 인간 조건이 "온 방 가득히 쉼 없이 파닥거리던 날개들"로 구체화된다. 여기서 "날개들"은 인간의 열망과 고뇌를 상징하며, 그 고뇌는 결국 "촉수를 세우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여기서 삶의 유한함 속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암시한다.
셋째 연은 회한의 시간에서 새로운 시작으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크로노스에 저당 잡힌 시간"은 과거의 회한과 상실을 의미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와 지혜의 "실타래"를 직조하는 행위는 적극적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는 시인이 단순한 슬픔이나 절망을 넘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려는 철학적 관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연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은 "다시 날개를 펼친다"는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를 넘어, 삶의 의미와 가능성을 깨닫는 순간을 찬미하는 시인의 철학적 태도를 드러낸다.
또한, 시의 마지막 구절은 독자에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개념을 다시 설명하며, 시간의 본질을 숙고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독자가 단순히 시를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도록 한다.
요컨대, 이인애 시인의 "잠들지 못하는 시간"은 시간을 주제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가능성을 직조하려는 시인의 철학적 통찰과 미학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는 복잡한 사유를 간결하고도 우아한 언어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