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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3. 2024

시계, 시간을 담아내는 그릇

김왕식









                시계, 시간을 담아내는 그릇








추상적인 것을 객관화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형상화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언어와 예술, 그리고 기술의 발전 속에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시간이라는 가장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특별하다. 시계는 이러한 시도의 결정체로, 시간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만든 놀라운 발명품이다.

시간은 본질적으로 흐르는 개념이다.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매 순간을 이어주는 연속성일 뿐이다. 그러나 이 연속성을 인식하고 정리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시계를 탄생시켰다. 태양의 위치로 시간을 가늠하던 고대의 해시계에서부터 톱니와 태엽으로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 그리고 전자식 시계와 원자시계에 이르기까지 시계는 인간이 시간을 이해하고 활용하려는 여정을 반영한다.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객관화하여 일상과 사회를 조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시계의 발명은 시간을 규칙적으로 나누고, 그 단위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게 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현대인의 삶을 떠올려 보라. 이는 시간이라는 추상이 구체적인 틀 속에 자리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계는 단순히 효율성만을 위한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이고도 예술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시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목격한다. 초침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우리는 순간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분침이 돌 때 시간의 축적을 느낀다. 시계는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우리의 유한함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이 유한함 속에서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예컨대, 한 시계가 멈췄을 때 우리는 단순히 도구의 고장을 떠올리는 것을 넘어, 멈춘 시간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직면한다. "시간은 과연 멈출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시계가 단순히 기계적 장치가 아닌 추상적 개념을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임을 보여준다. 시계는 시간의 형태를 빌려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나아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시계는 또한 미적 감각을 지닌 예술 작품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고풍스러운 회중시계, 화려한 장식이 달린 손목시계,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벽시계는 모두 각 시대와 문화의 미적 감각과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인간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체다.

결국 시계는 단순한 기계적 발명품이 아니라, 인간이 추상을 객관화하려는 욕망과 창조성을 집약한 결과물이다. 시계가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활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계가 시간을 측정하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 삶의 철학적 의미를 담아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느끼고, 시간을 성찰하는 일은 곧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다. 우리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보고,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본다. 시계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넘어선 인간 존재의 물음과 답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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