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04. 2025
■
아, 살았다,
한 시간 남짓, 고즈넉한 카페에서 나눈 대화. 커피잔 사이로 흐르는 이야기는 무겁고도 고요했다. 인텔리 청장년, 그가 말하는 고통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피로와는 달랐다. 세상이 감당하기 힘든 짐을 그의 어깨 위에 올려놓은 듯했다. 그의 눈빛엔 어딘가 모르게 무너진 자아가 담겨 있었고, 목소리엔 삶의 무게가 묻어났다.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말하는 이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는 귀 기울이는 이에게 자신의 상처를 나눌 용기를 냈다. 대화는 단순한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상처를 알아주고, 그 상처가 주는 아픔을 함께 느껴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대화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살았다.”
그 한마디는 짧지만 강렬했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빛을 발견한 사람의 탄성 같았다. 그 말은 곧 자신에게 허락된 작은 기적이었다. 고통 속에서 헤매던 그가 삶을 다시 느낀 순간, 세상이 온전히 그를 반겨준 것 같았다.
바로 그거였다.
이제 그는 진정으로 '살았다.' 고통에서 벗어나 비로소 숨을 쉬었다. 과거에 묶여 있던 자신을 내려놓고, 현재를 온전히 맞이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회복을 완벽한 상태로의 복귀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회복이란 그저 “살았다”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일 뿐인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잔잔한 평화가 찾아오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생긴다. 그제야 고통은 더 이상 고통으로 남아 있지 않고, 삶은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이 짧은 만남 속에서 그가 회복된 모습을 본 것은 내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서 이렇게 깊고 진정한 순간은 몇 번이나 있을까? 한 사람의 고통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흔치 않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의 끝에서 나온 진심이었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 그가 토해낸 “아, 살았다”라는 말은 내게도 하나의 기적처럼 남았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