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도시락, 사랑의 무게
ㅡ 자연인 안최호의 사랑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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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도시락, 사랑의 무게
ㅡ 자연인 안최호의 사랑
황혼은 빛이 부드럽게 기우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한결 차분해지고, 소란스러웠던 낮의 흔적들은 고요히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흔히 이 시기를 인생의 마무리라 부른다.
이 부부의 삶은 황혼 속에서도 새로운 빛을 피운다. 그들에게 황혼은 끝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시작이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신혼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아내는 일터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남편의 도시락을 손수 준비한다. 정성으로 담긴 도시락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아내가 전하는 사랑의 표현이자,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내고자 하는 다짐의 한 조각이다.
남편은 트럭 운전을 하며 고된 짐을 나르는 틈틈이 아내의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트럭 위에서 혼자 마주한 도시락에는 아내의 손길과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편은 그 도시락을 먹으며,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순간, 트럭이라는 거친 공간도 사랑으로 물든다.
그들의 하루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을지 몰라도, 서로를 위한 마음만큼은 어떤 부유한 삶보다 값지다. 세상은 흔히 황혼에 접어든 부부들이 각자의 삶을 따로 걷거나 이혼을 이야기한다며 낯선 소식을 전한다. 이들 부부는 서로를 위한 정성을 놓지 않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은 진해지고, 서로를 향한 마음은 더 단단해진다.
사랑은 특별한 날이나 화려한 이벤트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은 아내의 도시락처럼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정성 속에서, 남편의 트럭 속 한 켠에서 조용히 빛난다. 이 부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준다. 황혼이 결코 어둡지 않을 수 있음을, 삶의 끝자락에서도 사랑은 시작될 수 있음을.
황혼의 그윽한 빛 아래, 이들은 서로의 삶을 비추며 오늘도 도시락을 나눈다. 그 도시락 안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시간과 세월을 함께 견디며 쌓아온 사랑의 무게가 담겨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