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5. 2025
■
어두워지기 전에
한강
어두워지기 전에
그 말을 들었다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지옥처럼 바싹 마른 눈두덩을
너는 그림자로도 문지르지 않고
내 눈을 건너다봤다
내 눈 역시
바싹 마른 지옥인 것처럼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두려웠다.)
두렵지 않았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한강 작가의 시 '어두워지기 전에'는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불가피한 어둠을 직시하며 그 안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담담함의 경계를 탐구한다.
그의 문학적 미학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라는 대립적 개념을 조화롭게 아우르며, 독자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본질을 깊이 응시하도록 유도한다.
이 시는 짧은 문장과 반복적인 구조를 통해 심리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어두워질 거라고. / 더 어두워질 거라고."라는 구절은 마치 불가피한 운명을 암시하듯 단호하게 다가오며, 독자의 내면 깊은 곳까지 울림을 전달한다. 이러한 반복은 고조되는 불안 속에서도 묘한 안정감을 부여하며, 시적 리듬감을 형성한다.
지옥처럼 메마른 눈두덩과 그림자조차 허락하지 않는 장면은 인간 존재의 고통스러운 고독과 상실을 상징한다. 특히 "내 눈 역시 / 바싹 마른 지옥인 것처럼"이라는 표현은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가 곧 자신이라는 일체감을 드러내며, 그녀의 미의식 속에 깃든 '공감적 절망'을 드러낸다.
이처럼 한강 작가의 미학은 고통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인간 존재의 무게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데 있다.
이 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순히 어둠에 머물지 않는다. "두려웠다. / 두렵지 않았다"는 구절은 내면의 모순된 감정과 복합성을 간결한 언어로 담아내며, 삶의 수용이라는 철학적 깊이를 드러낸다.
결국, 한강 작가는 삶의 가치를 절대적인 희망이나 절망으로 국한하지 않고, 양극단의 경계를 허물며 그 속에서 평온함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요컨대, 한강 작가의 작품은 고통을 직면하는 용기와 그 속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을 통해, 우리에게 삶을 관조하고 수용할 힘을 제공한다. 그녀의 언어는 절제된 동시에 강렬하며, 독자로 단순한 이해를 넘어 스스로의 내면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바로 그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어둠 속에서 빛의 흔적을 찾으려는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
한강 작가님께
작가님의 '어두워지기 전에'는 저를 한참 동안 한 자리에 머물게 했습니다. 시의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도 묵직하게 다가와, 오랜 시간 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제 내면의 어둠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이 반복적인 구절은 마치 운명처럼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어둠과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그것이 끝없는 절망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표현하신 '지옥처럼 바싹 마른 눈두덩'과 같은 감정은 저 또한 경험한 적이 있기에 더더욱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는 단순히 어둠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두렵지 않음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는 제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었습니다.
제가 느낀 작가님의 시적 세계는 삶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힘을 가르쳐줍니다.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두려움과 용기가 공존하는 세계를 과감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제 내면의 어둠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이 저라는 존재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독자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나아가 삶의 다양한 면들을 수용하도록 돕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 시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제 마음속 어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삶의 무게와 깊이를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 주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더욱 풍요로운 사유와 감동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