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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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에 놓인 문학의 숨결
텃밭에서 손수 기른 푸른 채소들,
그것을 다듬고 절여 밥상에 올리던 박경리.
팔순의 손길은 거칠고도 다정했다.
토지문화관의 문을 열고 들어선 후배들은
그 따뜻한 밥 한 술에 마음이 무너졌다.
한 편의 글을 쓰지 않고는
그 밥상을 감히 비울 수 없었다.
붕대를 감은 몸으로,
박경리는 원고지를 메웠다.
한쪽 가슴을 도려낸 상처보다,
더 깊고 단단한 사랑이 그의 곁에 있었다.
은희경은 말했다.
"한쪽 젖이 없는 어머니."
허나 그는 두 가슴을 가진 이보다
더 크고 따뜻한 품이었다.
박완서,
그는 조용히 웃었다.
도시의 담백한 바람을 닮은 어머니.
자식 세대와 나란히 걷고자 했던 사람.
젊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 나이는 거저먹은 나이가 아니다."
그는 말했고,
그 말은 마치 낡은 문장 위에 놓인
신선한 숨결 같았다.
밥상은 어머니의 자리였다.
때로는 곧고 단단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박경리와 박완서,
두 어머니는 각자의 밥상 위에
문학이라는 음식을 차려놓았다.
그 밥상 앞에 앉은 우리는
단지 배를 채운 것이 아니다.
그 사랑, 그 숨결, 그 문장을
천천히 씹고, 삼키고, 마음에 담았다.
세월은 흘러 두 분은 먼 길을 떠났지만,
밥상의 온기는 식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따뜻한 온도가 손끝에 전해온다.
단어와 문장 사이,
그곳엔 여전히 밥 냄새가 배어 있다.
이제 누군가는 말한다.
"문학에는 성별이 없다."
그 밥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따뜻함만큼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모성의 숨결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밥상 앞에 앉아 있다.
숟가락을 들고, 조심스레 문장을 입에 머금는다.
그리고 천천히 깨닫는다.
그 밥상은 곧 문학이었다는 것을.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