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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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시인은 2
시인 유숙희
을사년 푸른 뱀의 해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혼돈 속에서
푸르고 푸르른
시를 쓰고 싶소
마음까지 닿는 세상
비켜갈 길 없고
고해(苦海)
바다와 같은 세상
오늘도 묵묵히
재봉틀과 마주 앉는
반복된 나의 일상
자투리천 모아서
상보도 만들고
조각이불도 만들 듯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간절히 떠오르는
시 한 구절씩 모아
내 삶의
무늬를 엮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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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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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인의 시 '바느질 시인은 2'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 속에서 시를 창작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시인은 재봉틀 앞에 앉아 바느질을 하듯, 시를 한 구절씩 엮어가며 자신의 삶을 무늬처럼 채워간다. 이러한 창작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삶을 깊이 통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로 확장된다.
유숙희 시인은 혼돈의 역사 속에서도 '푸르고 푸르른 시'를 쓰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는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긍정의 시선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마음까지 닿는 세상'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상징하며, 그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모습은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소소한 일상과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도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철학과 연결된다.
또한, '자투리천 모아서 상보도 만들고 조각이불도 만들 듯'이라는 표현은 버려지기 쉬운 조각들을 모아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바느질 과정과, 파편화된 일상 속에서 시를 엮어내는 창작 과정을 연결시킨다.
이는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가치관을 담고 있다.
유숙희 시인의 작품은 소박하고 따뜻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표현보다는 일상의 언어로 담담하게 풀어낸 시어들이 오히려 깊은 울림을 준다.
반복되는 일상을 바느질이라는 소재로 형상화한 것은 단순한 일과도 창조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으로 승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시인의 미의식이 일상의 소소함과 반복성 속에서도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는 데 있음을 나타낸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시를 엮어가는 과정은 성실하고 꾸준한 창작 태도를 상징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하는 시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시인의 삶의 흔적이자 무늬다.
이는 시 창작이 곧 삶의 연장이자 자기 성찰의 과정임을 강조하며,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유숙희 시인의 시는 삶과 예술을 동일선상에 놓고, 반복적이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진정성 있는 시를 엮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작은 조각들을 모아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듯, 시인은 자신의 삶을 시로 엮어가고 있다.
이는 유숙희 시인의 작품이 단순한 시적 표현을 넘어 삶의 철학과 태도가 깊이 스며든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 세계는 독자에게도 삶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가는 자세를 일깨워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