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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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수의사
도심 외곽, 한적한 골목 끝에 자리 잡은 작은 동물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병원 안은 늘 조용하면서도 따뜻했다. 회색 벽면엔 여러 동물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카운터 옆에는 손님들이 두고 간 감사 편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병원의 주인은 조용한 미소를 띤 중년의 수의사였다. 그는 세상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했고, 동물의 고통 앞에서 늘 겸손했다.
그의 특별함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동물을 위해 기도하는 데 있었다. 병원을 찾은 이들은 수의사의 이러한 모습을 처음엔 낯설어했다. 주인의 품에서 힘없이 늘어져 있던 강아지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수의사의 모습은 왠지 모를 신비감을 자아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이 생명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하는 일에 당신의 손길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그는 묵묵히 치료를 이어갔다. 그의 손길은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동물들의 비명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료 도구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뤘다. 치료를 마친 동물이 조금이라도 기운을 되찾으면 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버텨줘서 고마워.”
이 병원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넘쳤다. 다른 병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이곳은 늘 문전성시였다. 반려동물의 주인들은 수의사의 기도가 단순히 형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기도에는 진심과 사랑이 담겨 있었고, 그것은 동물들뿐 아니라 주인들의 마음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한 손님이 말했다.
“원장님, 정말 신기한 일이 있어요. 제 고양이가 예전엔 병원만 와도 난리를 치고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여기만 오면 차분해지네요. 원장님 기도가 아이에게도 전해졌나 봐요.”
수의사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문은 점점 더 멀리 퍼졌다. 치료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병원 문턱을 넘어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병이 나아지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픈 동물과 걱정으로 지친 주인이 함께 위로를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이었다.
수의사의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 행위로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신념이자 치료의 시작이었다. 동물을 향한 사랑, 그리고 그들을 아끼는 주인을 향한 연민. 그의 진심은 기도를 통해 전달되었고,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 병원의 벽 한 켠에 새로운 감사 편지가 붙었다.
“원장님 덕분에 우리 가족은 새로운 희망을 찾았습니다. 우리 반려견은 이제 아프지 않아요. 원장님께서 해주신 기도가 정말 기적을 일으킨 것 같아요.”
수의사는 그 편지를 읽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았다. 병원 안의 온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날 밤, 병원의 불이 꺼지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을 때, 문밖에는 조용히 빛나는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수의사는 창문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정말로, 기적이란 게 있는 걸까.”
그 순간,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밤하늘 속 별들의 반짝임처럼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병원 앞에는 또 한 사람, 간절한 마음을 품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손님이 서 있었다.
ㅡ 청람